바다가 들려주는 옛이야기, 이제는 우리가 남길 차례

GMIS 11 / 박가영

넷플릭스 시리즈 <폭삭 속았수다>를 본 뒤 바다를 다르게 보게 됐다.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든 공간처럼 느껴졌다.

바다를 기억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해양 국가들이 실제로 정책과 교육에 반영하고 있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기억으로서의 바다’는 최근 국제 해양 문화 논의에서 주목받는 개념이다. 바다는 식량과 자원의 원천일 뿐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 믿음, 생활 기술이 쌓여 있는 장소다.

그래서 전통 고기잡이 방법, 전해 내려오는 바다 이야기, 제사, 옛 항로 같은 것들도 모두 바다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식으로 여겨지고, 이를 지키는 일이 지속 가능한 해양 관리를 위한 출발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한국은 제주 해녀 문화, 통영의 멸치잡이, 서해안 갯벌 마을 문화를 무형문화재로 등록해 보존하고 있고, 이 중 일부는 유네스코에 등재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 자산을 디지털로 기록하거나 학교 교육과정에 반영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인도네시아 해양수산부(KKP)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약 1만 7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해양 국가로, 각 지역마다 고유한 바다 이야기와 전통 지식을 간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바 해역의 바다 여신 ‘뇨이 로로 키둘(Nyi Roro Kidul)’ 이야기, 술라웨시 지역의 조상에게 바다를 기리는 행사, 발리 어민들이 달력에 따라 고기잡이를 하는 전통 등이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전통 지식을 모아 정리하고 데이터로 남기는 ‘지역 바다 지식 체계화 프로젝트’를 시험적으로 시작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바다를 기억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두 나라 모두 이런 기억을 기술, 교육, 디지털 콘텐츠 등 다양한 방법으로 다시 살리려 하고 있다. 바다를 살아 있는 문화 공간으로 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한국은 해양수산부와 지방자치단체 주관으로, 어촌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녹음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조류 흐름, 해산물 잡는 시기, 날씨 징후 등은 오랜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것들이며, 과학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특히 기후 변화가 바다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는 데 이런 지역 지식은 큰 도움이 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바다 전설과 전통 제사를 바탕으로 한 축제나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이 문화 자부심을 되살리고, 지역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관광창조경제부에 따르면, 발리와 술라웨시, 말루쿠 지역에서 열리는 ‘전통 어업 축제’ 같은 행사가 늘고 있으며,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두 나라의 협력도 이런 흐름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바다 관련 기술 교육뿐 아니라, 해양 문화 교류 행사, 전통 어업 방식 비교 연구, 디지털 기록 기술 공유 등 여러 형태의 협력이 진행 중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전통 지식과 현대 과학 사이에는 말과 개념의 차이가 있고, 이야기 중심의 지식을 수치로 바꾸기 어렵거나, 실용성 위주의 정책과 충돌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전통과 기억이야말로 바다를 오래도록 지키는 데 꼭 필요한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바다는 여전히 풍요롭지만,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는 점점 잊히고 있다. 바다를 기억하는 일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익숙했던 고기잡이 방법을 기록하고, 마을 어르신의 경험을 남기고, 사라진 전설을 다시 읽는 일이다.

그런 작은 노력들이 모이면, 바다는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바다의 기억이 끊기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 이 이야기를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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