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개척자 고 최계월 회장을 추모하며(마지막회)

대한민국 첫 해외투자 기업이자 인도네시아 첫 해외투자법인(PMA) 남방개발(법인명 코데코)의 창업주 최계월 회장이 지난 10월 27일 별세했다.

고 최계월 회장은 인도네시아 한인기업 진출 50년사의 시초가 되고 있다. 최계월 회장은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원시림을 개발하는 산림개발산업뿐만 아니라 합판, 고무, 시멘트, 석유, 가스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1994년에는 인도네시아에 가스전을 세워 천연가스를 생산했다.

1996년 최 회장은 수하르토 대통령으로부터‘인도네시아 독립 50주년 기념 경제발전 특별 공로상 ‘일등공로훈장(Bintang Jasa Pratama)’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대표적인 한국기업 3K 가운데 하나인 코테코(KODECO)社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독보적인 최대 그룹이었다. 이후 코린도(KORINDO) 그룹과 키데코(KIDECO)사가 한인기업군 가운데 대표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고 최계월 회장은 1972년 한인회를 창설하여 초대회장을 맡아 한인동포 자녀교육을 위해 한국학교를 건립하는 등 14년간 한인사회의 골격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왔다.

근대사 격동의 시대에 인도네시아 정부관리에게 한국인에 대한 강한 이미지 남기고 한인 1세대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고 최계월 회장.

비록 말년에 고국이 아닌 일본에서 거주하면서도 자서전 제목처럼 ‘깔리만탄의 왕’으로서 인도네시아를 향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는게 측근의 이야기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그의 경영철학은 한인기업과 동포들 그리고 우리 후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한인포스트는 고 최계월 회장을 추모하며 김문환 칼럼리스트를 통해 그가 걸어온 일대기를 특집으로 연재한다.

             <한인포스트 편집부>

<해저 65키로 송유관 공사가 완공된 1994년부터 서부 마두라 광구 폴랭 가스전(Poleng Gas Field)에서 가스를 공급받기 시작한 수라바야 인근 Gresik PLN 발전소. 이 가스전은 애초 1993년 준공식을 목전에 두고, 파이프 누수결함이 발생하여 1년 이상 준공식이 지연되었다. 이때 해저 파이프 공사 시공사는 뻐르따미나 사의 하청업체인 구나 누사(PT. Guna Nusa)였으며, 파이프 제품은 바끄리 그룹 계열사가 공급하였다.>

서부마두라 유전

‘눈물 훔친 장관’
1986년 이봉서 동력자원부장관은 최성택 한국석유개발공사 사장과 최계월 사장을 서울 팔레스 호텔로 불렀다. 그는 현재 인도네시아로부터 도입 중인 LNG가격이 높다고 국회가 따지고 있으니, 가격인하 문제를 인도네시아 측과 협의하도록 지시한다. 재빨리 인도네시아로 건너간 최 사장은 협상 끝에, 계약은 계약이니만큼 가격을 내리지는 못하고, 대신 3척 분의 LNG(24백만 불 상당)를 무상으로 제공받도록 타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가격인하 효과를 가져오게 한다. 이 당시의 교섭내용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한국측 김찬진 변호사가 인도네시아 측 소피안 와난디와 상호 확인하여 그 결과를 각각의 상관에게 보고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에너지 협력분야에서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밀월관계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였다.

1988년 11월, 국회 ‘5공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국회 산업자원분과 소속으로 YS의 비서관 출신이던 통일민주당 서석재의원이 마이크 앞에 섰다. ”여러분, 전두환 정권의 자금줄이 따로 있었어요. 엄청난 현금을 주무르는 한국석유개발공사에 의혹이 있단 말입니다. 이원조 전임 사장이 이 돈줄을 쥐고 정권에 파이프 역할을 했어요. 유개공의 막대한 자금이 ‘석유사업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인도네시아에 있는 코데코 에너지 사에 흘러가 이 돈이 다시 정치자금으로 들어오고 있단 말입니다. 마두라 유전은 완전 허구예요. 검찰총장! 한국남방개발주식회사와 한국석유개발공사를 당장 조사할 용의가 있는지 답변해 보시오! ” 한국석유개발공사 최성택 사장은 이렇게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그는 육사 11기 출신 중 전두환, 김복동, 손영길과 더불어 1973년 1월부로 동기생 중 가장 먼저 별을 단 선두주자였으며, 국방부 정보본부장을 끝으로 예편한 3성 장군이었고 소위 ‘하나회’ 원조 멤버였다. 실제로 최계월 사장은 그 해 연말 한때 금융계의 황제로 군림하였던 이원조 전 사장과 더불어 검찰의 소환을 받았으나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이와 같이 코데코 에너지 사가 중대한 위기에 봉착한 경우는 전두환 대통령 재임 초기에도 있었다. 당시 국방부 정보본부장이던 최성택 장군이 대통령의 명을 받아, 마두라 유전 사업권을 국내의 D 재벌과 대통령의 측근에게 넘기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극비로 방문하여, 베니 무르다니 장군과 면담을 갖게 되었다. 최장군의 이야기를 다 들은 베니 장군은 ”서부마두라 광구는 한국, 인도네시아 양국의 우호증진을 위해 사심 없이 노력하는 최 사장에게 공여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이 광구를 이양할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다. 최 장군은 귀국 후 이러한 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였고, 사태가 더 꼬이기 전에 이 사실을 불문에 부치게 되었다. 이 당시의 비화는 훗날 모든 공직에서 떠난 최 장군이 최 사장에게 은밀하게 귀띔해주어 알게 된 사실이었다.

1986년 10월 경제장관협의회 의결에 따라 ‘경영정상화 될 때까지만 정부측에서 경영권을 행사한다’는 조건부로 25%의 지분과 경영권을 정부측에 넘겨 그 시행사인 한국석유개발공사가 서부마두라 유전을 경영하고 있었다. 1989년 늦여름, 갓 취임한 이봉서(李鳳瑞) 동력자원부장관이 서부마두라 유전 시추현장을 찾았다.

자바의 동쪽 끝, 수라바야에서 다시 헬기로 유전부근을 어지럽게 빙빙 돌았다. 그러나 수억 불이 들어갔다던 그 지역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최사장,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흔적이라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최사장은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 지 답답할 정도였다. “해저유전이란 망망대해에 시추할 때만 싱가포르에서 비싼 시추선(Rig)을 임차해와 작업하다가 끝나면 철수하는 겁니다. 그 흔적은 남을 수 없습니다. 여태껏 대한민국 신문, 방송사의 경제부 기자들이 대부분 이곳을 다녀갔는데 똑 같은 설명을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두라 유전이 있기까지의 뿌리를 보시도록, 저희들이 첫발을 내디딘 남부 깔리만딴 주 바뚜리찐 목재현장을 보여 드리는 일정표를 짜 놓은 겁니다. 장관님, 이제 몇 십분 후면 그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계획대로 이장관은 헬기 편으로 마두라 상공을 선회하다 직접 바뚜리찐으로 날아갔다. 장관이 도착한 헬리포트에서 영빈관까지 올라가는 고갯길엔 어린 학생들이 양손에 나눠 든 채 흔들어대는 양 국기의 물결이 적도의 땡볕을 아랑곳없이 쉬지 않고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코데코 사 목재사업부는 남부 깔리만딴 지역에만 3개 지역으로 확장되어 48만 헥타르에 달하는 양호한 임지(HPH)뿐만 아니라, 제재 몰딩 공장, 합판공장, 그리고 고무, 야자 농원사업이 한창 번성하여 지역 전체가 활기를 보이고 있던 전성기였다. 전인미답지이던 밀림지역 한복판에 5만 명 인구의 도시가 형성되어, 현지인 4천여 명, 한국직원 100여 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개미처럼 일하고 있었다. “아니, 이런 오지에 이렇게 큰 사업장이 있고, 많은 한국사람들이 밤낮으로 뛰면서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니.”

저녁시간이 되어 전 한국직원들이 영빈관에 모였다. 우선 맥주 한 모금으로 목을 추긴 장관은 인사말씀을 이어갔다.
“이렇게 가족과 떨어져 이역만리에서, 그것도 문화생활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여러분이 불철주야 땀 흘리는 이 작업장이 대한민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원자재인 목재, 오일, 가스 업종이라 하니 국내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큰일들을 여러분들이 담당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초창기엔 한국인을 비롯한 현지인 희생자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정부를 대표하여 심심한 위로를 표하며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존경심을 표합니다. 이곳에서 쌓아 올린 이 저력이 바로 저 마두라 유전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저는 이제야 마두라 유전 개발사업의 실체를 알 것 같습니다. 돌아가면 조속히 시추자금이 지원되어 꼭 성공할 수 있도록 주무장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헬기에서 내릴 때 태극기를 흔들던 어린 학생들이 다 코데코 사가 지어준 학교의 아이들이라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야 말로 민간 외교관이며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중간중간 끊어지던 말씀이 이젠 북받쳐 오르는 감정억제를 포기한 듯 장관의 손수건이 눈가로 옮겨가 잠시 정적에 싸인다. 모두가 말없이 숙연해지자, 현지인보다 더 새까맣게 탄 한국기술자들의 고개가 하나 둘씩 꺾이며 양 소매 깃으로 번갈아 가며 눈가를 훔치며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바뚜리찐을 떠나기 직전, 이 장관은 영빈관 앞에 소나무 한 그루로 기념식수를 마치고 방명록에 아래와 같이 몇 자의 글을 남기고 헬기에 올랐다.
칼리만탄에 기적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조국에는 영광>을, <양국에는 우호>를 이룩했습니다. 이제 꼭 마두라에도 같은 기적을 이루시어 자원개발 선구자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1989.8.31 대한민국 동력자원부장관 이봉서… ‘고난의 행군’ 끝에 ‘명예회복’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끊임없이 소요되는 자금을 감당하지 못한 한국석유개발공사는 4년 만에 서부 마두라 유전 경영을 포기하고 25%의 지분을 코데코 측에 반납하고 철수한다.

자금 파이프를 잃은 코데코 사는 다시 독자적인 경영체재로 들어가 추가 시추자금 확보를 위해 대정부로비를 반복하게 된다. 10년이 경과한 1991년 6월 말 부로 벌써 4억불의 자금이 소진되었고, 총 투자금 중, 한국정부 지원자금은 29%인 1억1천7백만 불인데 반해, 코데코 측 자체 조달자금은 47%인 1억8천8백만 불에 달하여 회사의 자금압박은 심각한 상태였다.

모기업은 주거래은행인 한일은행의 차입금을 변제하지 못해 1999년 11월 ‘적색업체’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대한 마지막 돌파구를 찾기 위해 1999년 말 코데코 에너지 사는 서부 마두라 유전 지분의 25%와 폴랭 광구의 지분 50%를 스페인 국적의 YPF(실제 운영주체는 미국계)사에 넘기자마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산은 즉시 정상화 되었다.

2002년 중국 국영석유개발회사인 CNOOC는 이 지분을 인수하여 뻐르따미나 사 50%, 코데코 사 25%, CNOOC 25%의 지분구조로 유지되며 일산 13,400 배럴의 원유와 일산 138백만 피트의 가스를 생산하는 중견업체로 자리잡게 된다. 이제 최계월 이름 앞에 20년 동안 따라다니던 ‘국제사기꾼’ 이라는 오명은 벗겨지며 배당금으로 나오는 자금으로 케케묵은 부채도 다 갚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광권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2011년 5월 6일이 임박하자 연장여부와 연장 이후의 지분구도에 대해 권력층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며 치열한 이권쟁탈전이 벌어진다. 신규 주주회사로 기존의 3개사 이외에 PT. Sinergindo Citra Harapan과 Pure Link Investment Ltd 라는 생소한 이름이 등장하면서 언론사들은 이 신규업체의 베일을 벗기기에 열중한다. 결국 이들 두 회사가 주요 정파와 연결되어 있음을 간파한 한 시민단체(Indonesian Resources Studies)는 4월 12일 두 회사를 부패척결위원회(KPK)에 고발한다. 그 다음날인 4월 13일 3개 기존 당사자자들이 참석한 회의 석상에서 정부당국은 광권 ‘20년 연장’과 ‘Pertamina-60%, 코데코-10%, CNOOC-10%, Sinergindo-10%, Pure Link-10%’의 새로운 지분 구도안을 흘리게 된다.
그러나 30년 전에 자기들 밥그릇을 뺏긴 적이 있는 빠르따미나 사는 이번 기회에 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한다. 즉 4월 18일 에너지광물자원부 (ESDM)와 석유가스청(BP Migas)과의 연석회의에서 100% 지분독점을 요청한다.

뻐르따미나 사의 강력한 로비와 시민단체를 통한 여론몰이를 한 탓인지 5월 5일 정부는 ‘서부마두라 유전의 광권이 연장되었음(Amended and Restated Production Sharing Contract)’을 발표하였고 연장기간은 20년이며 주주로는 뻐르따미나사 사와 코데코 사가 각각 80%와 20%를 보유하게 되며 뻐르따미나 사가 운영권자(Operator)가 되었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그러나 종전 25% 주주였던 CNOOC는 정부의 신뢰도에 불만을 표시하며 주주 참여를 자진 포기하였고 신규 주주로 이름을 올리려던 Sinergindo사와 Pure Link사는 외형적으로는 일단 주주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번 서부 마두라 유전 광권 연장 경쟁에서 탈락한 CNOOC는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나이지리아 앙골라 광구에서 뻐르따미나 사와 합작으로 유전개발을 하겠다던 계약을 파기한다고 선언하였고 광구 연고지역 지방자치단체인 그레식군(Kabupaten Gresik)과 방깔란군(Kabupaten Bangkalan)은 물론 동부 자와 주정부까지 나서 주식할당을 요구할 정도로 서부 마두라 광권 연장에 관한 이권쟁탈전이 치열함을 보여주었다. 이제 정략적 투자사업은 그 주체가 사기업이라 하더라도 정부와 공조하지 않고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이상으로 우리는 시대의 벽을 깨고 뛰쳐나온 한 개척자의 활약상을 통해 최초의‘해외직접투자’와 불가능할 것 같던‘서부 마두라 유전’진행과정을 지켜보았다.
고인은 1974년 은탑산업훈장, 1977년 국민훈장 동백장, 1978년 5.16민족상 산업부문본상, 그리고 1996년 인도네시아 정부가 수여하는 일등수교훈장을 연이어 수상할 정도로 그의 업적은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최계월 회장의 부음이 들려온 며칠 후 걸려온 ‘한인포스트’ 편집진의 추모기사 요청전화에 주저 없이 응답하게 된 이유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