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심리치료사
자카르타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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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상담실에 한 아동이 어머니 손에 붙들려왔다.
해외에서 3년 정도를 살다가 가족이 한국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는데, 학교에서 아이가 힘들어하고 지적을 자주 받아 선생님이 상담을 권유하셨다고 하였다.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6개월째 수업시간에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돌아다니고, 조용히 수업에 임해야 할 이유를 모르는 아이. 하지만 검사결과 아이는 약간의 위축감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큰 이상이 없었다.
단, 해외에 거주하는 동안 자유분방한 수업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아이가 한국의 듣기 위주의 수업방식에 적응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6개월이면 충분히 적응하고도 남지 않느냐는 어머니의 조급한 태도와 몇 번의 주의 후 이를 잘 따르지 못하는 아이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선생님의 모습은 아이의 적응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적응하는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어머니와 선생님의 생각이 변하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 속에서 차츰 한국의 수업방식과 또래와의 놀이문화에 적응해가기 시작하였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나와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도 언젠가는 한국으로 혹은 다른 삶의 터전으로 옮겨갈 것이다.
그 때 이 아동의 어머니처럼 조급하게 아이를 재촉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고, 진정으로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기 위해서는 평소 ‘천천히’ 양육하는 것에 대하여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빨리빨리’ 는 이미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
알고는 있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것. ‘빨리빨리’문화는 양육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작게는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빨리 하도록 재촉 및 지적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아이의 발달이나 교육상태가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피고 자신의 자녀들이 남들보다 앞선 발달을 하고 앞선 교육을 받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충분한 시간이 흘러야 과일이 자연스럽고 알맞게 익듯이, 아이들도 각자에 맞는 속도로 충분한 시간을 경험해야 부작용 없는 성장을 한다.
발달이 조금 느린 아이는 느린 모습 그대로 그 아이의 페이스에 맞춰 성장한다.
마음에 상처가 생겼을 때 이를 빨리 극복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차츰차츰 더디게 극복해 나가는 아이도 있다.
인생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삶의 교훈들을 깨달아 가는 속도도 저마다 다르다.
아이의 발달이 조금 느린가?
행동이 느려 답답한가? 학습능력이 다른 아이보다 뒤쳐지는가? 여러 변화들을 빠르게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가?
아무리 재촉해도 충분한 시간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인정하자.
아이들 저마다의 속도를 무시하고 빠른 성장과 교육을 강요하는 부모의 양육태도는 지금은 계획대로 되는 듯 보이나 언젠가 부작용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행동이 빠르고 조급하게 많은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더 성공하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닌 것처럼, 아이들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기다려주고 그에 맞는 성장을 하게끔 양육하는 것이 아이를 실패한 인생으로 내모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부모부터가 조급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힘을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조급한 어른들이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생각에 섣불리 솔루션을 제안하여 아이들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강압적으로 단축시켜 버리거나 없애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해당 나이가 지나면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놓치면 손해 볼 것을 알기에 부모들은 더 조급해진다.
하지만 이들을 놓치면 어떤 손해를 경험하게 되는지 혹은 놓치지 않으면 어떤 특혜를 얻게 되는지를 안내해주는 선까지가 부모가 해주어야 할 일이다.
그 이후의 선택은 아이들의 몫이다. 선택과 그에 따른 실패 혹은 성공을 경험해보아야 책임을 배우게 되고 그 다음 선택을 신중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부모의 교훈을 더 이상 잔소리가 아닌 인생의 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시행착오가 꼭 시간낭비는 아니다.
부모의 조급한 양육태도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가 인생을 계획하고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천천히 아이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지식의 성장을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는 ‘천천히’ 양육은 아이들로 하여금 부작용 없는 성장을 하게 돕는다.
자신을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속도에 맞게 성장한 아이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마음의 건강’을 얻고 인생에 어려움을 만나도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이 생긴다.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학습할 수 있으며, 덤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조금 더디어 보일 지라도 저마다의 속도에 맞추어 성장하는 아이들을 격려하고 믿고 기다려주는 부모들이 많이 생겨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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