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의 한국 소설 이야기 (13)

신영덕<신영덕(인도네시아 대학교 한국학과 객원교수,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한인포스트 문화분야 칼럼리스트>

1980년대 한국 사회는 신군부의 등장과 이를 반대하는 민주화 투쟁,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 국제교류 확대, 소연방의 해체와 동구권 몰락에 의한 이념 퇴조 등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문학 작품은 이러한 현상을 많이 다루었다. 이문열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하나이다. 그는 다양하고 폭넓은 관심으로 당대의 문제를 다루었으며,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문열의 <영웅시대>(1984)는 그의 대표적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이데올로기와 분단 현실의 문제 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1950년 말부터 1953년 9월 하순까지의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사건을 다루면서 낭만적 이상주의자인 주인공 이동영의 모습을 통해 양반 출신의 지식인이 사회주의자로 나서게 된 현실을 매우 구체적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인공의 삶을 중심으로 북한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낭만적 이상주의자가 몰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모습은 동영의 스승이자 아나계의 거물인 박영창의 삶에서도 나타난다. ‘이상적인 세상만 온다면 권력이야 어디 가 있든 무슨 상관이겠는가’라고 할 정도로 순수한 이념가이었던 그는 북한 현실에서 왜소한 관료로 지내다가 이후 남로당이라는 이유로 숙청되고 마는 것이다.

주인공의 모친과 처 조정인의 삶을 통해서는 이념의 폐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전통 소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우리 전통 소설의 경우 많은 작품들이 한 가정 또는 가문의 이야기를 소설화 하였다. 특히 가문소설이라고도 불리는 작품들은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구성을 지니면서 풍부한 어휘, 품위 있으면서 다양한 문장, 갖가지 실감을 돋우는 표현을 구사하였다.

이 작품이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실과 무관치 않으리라 여겨진다.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자 하는 수법은 현대의 많은 작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거니와 이는 한국 소설의 한 특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영웅시대>는 6·25 전쟁과 같은 비극이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 자신의 관념을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써 원체험의 진실성마저 훼손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사실은 작품 말미에 있는 <동영의 노트(1953.6.13)>에서 보다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독자들에게 “모든 이데올로기에 거역하고, 그 찬란한 약속 뒤에 감추어진 독이빨과 날카로운 발톱을 경계할 것과 자기 이름 아래 끌어들이려는 모든 집단에 반역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휴머니즘과 민족주의를 내세운다. 그런데 이것은 작가 자신의 표현대로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애매한 휴머니즘이나 턱 없이 확대된 민족주의에 불과하다. 치열한 현실 탐구가 결여된 작가의 관념적 진술은 이 작품의 의미를 한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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