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역사로 보는 인도네시아와 영국 외교 관계

(1974년 인도네시아를 처음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수카르노 정부 대립관계… 수하르토 정부 우호관계
1974년 인도네시아를 처음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영국은 인도네시아 독립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은 1946년 자카르타 쿠닝안에 있는 링가자티에서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왕국 간의 협상을 중재했다.

그 당시 네덜란드는 자와, 수마트라, 마두라를 포함하는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사실상 영토를 지배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1947년 7월 21일부터 8월 5일까지 군사작전으로 군사 침략했다.

네덜란드는 1948년 12월 19일부터 20일까지 2차 군사 공격을 감행했다. 마침내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왕국은 Den Haag (헤이그)에서 원탁회의(KMB) 협정에 서명했다.

인도네시아와 영국 외교 관계는 KMB 협정이 체결된 1949년 12월에 시작되었다. 당시 Soebandrio는 영국 주재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사로 임명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사망한 아버지 조지 6세의 뒤를 이어 1952년 2월 6일 영국 왕위에 올랐다.

당시 수카르노는 1953년 6월 2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 인도네시아 대표로 아구스 살림 특사를 보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와 영국의 외교 관계는 수카르노 대통령이 체제를 이끌면서 협상했다.

그 이유는 당시 동구권, 즉 소련, 중국, 베트남에 치우쳐 있던 수카르노의 대외정책 태도 때문이었다. 수카르노는 종종 영국을 포함한 서구권 국가들을 겨냥한 반제국주의와 신식민주의의 슬로건과 대치했다.

그 결과 수카르노 집권 당시 대영제국 대표들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수카르노의 적대감을 촉발시킨 또 다른 문제는 영국이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 제국을 통치했기 때문이다.

당시 수카르노는 말레이시아 연방의 구성은 신 식민주의의 대표자로 여겨지는 영국이 인도네시아를 압박하려는 시도로 여겼다.

이런 외교 갈등으로 자카르타 시민은 자카르타에 있는 영국대사관과 외교관 가옥 21채를 불태웠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와 영국의 양국관계는 1967년 3월 12일 수카르노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 서서히 바뀌었다. 수하르토가 수카르노를 대신하여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수하르토는 영국과의 양국관계를 개선했다. 당시 수하르토는 서구권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 1974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인도네시아 첫 방문

(1974년 인도네시아를 처음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1974년 인도네시아를 처음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1979년 수하르토 대통령 영국 방문)
(1979년 수하르토 대통령 영국 방문)
(2012년 10월 31일 Susilo Bambang Yudhoyono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영국 버킹검에서 훈장을 받고 있다.)
(2012년 10월 31일 Susilo Bambang Yudhoyono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영국 버킹검에서 훈장을 받고 있다.)

이러한 외교정책의 변화로 1974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당시 수하르토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문은 양국 우정의 중요한 새 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또한 수하르토는 식민지 이후 인도네시아가 진행하고 있는 발전을 위해 영국이 자본과 전문가 파견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그런 다음 수하르토는 1979년 영국을 방문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문을 답래했다. 그 때 수하르토는 특히 경제 분야, 수출품에 대한 관세를 줄이는 협력을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사. 콤파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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