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 FTA 시대 ‘TPP’ 효과는

12개국 경제영토 하나로… 양자 FTA 불합리 조항 만회 가능

(2015년 3월 17일)

최근 김재홍 KOTRA 사장과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부임하면서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거듭 강조했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오영호 전 KOTRA 사장과 한덕수 전 무역협회 회장 역시 자리를 떠나며 한결같이 TPP 가입을 당부했다. 한국 무역과 해외진출을 주관하는 두 단체의 전·현직 수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정작 TPP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제로(0)’에 가깝다. TPP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데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정보도 희박하다. 이는 우리 정부가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에만 힘을 쏟다 뒤늦게 TPP를 주목하고 ‘지각 참여’를 선언한 탓도 크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짓게 될 TPP는 과연 무엇이고, 우려되는 문제와 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짚어볼 계획이다.

“이제 대세는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아니라 메가FTA(3개국 이상이 참여하는 대형 FTA)다.”

올해 1월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고 돌아온 한덕수 전 무역협회 회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말을 아끼는 것으로 유명한 한 회장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는 언론과 접촉할 때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메가FTA, 더 정확하게는 TPP 가입을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한·중 FTA가 타결되는 등 양자 간 FTA가 급물살을 타는 시점이어서 상황은 더욱 묘했다. 우리나라가 이제까지 전력을 다해온 양자 간 FTA보다 가입하지도 않은 TPP에 무게를 싣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산업계는 한·중 FTA 타결로 한껏 고무된 상태였다. 우리나라의 경제영토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73%나 된다는 장밋빛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다보스 포럼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세계는 더 이상 양자 간 FTA에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 경제 리더들이 모인 다보스 포럼에서 회자된 것은 TPP와 같은 메가FTA였다. 2004년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49개국과 FTA를 맺으며 FTA 강국임을 자부했던 우리나라로서는 허탈한 순간이었다.

■美 주도 TPP vs. 中 주도 RCEP
현재 우리나라가 진행하고 있는 메가 FTA는 크게 한·중·일 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진행상황이 빠른 것은 TPP로 올 상반기 타결이 유력시된다. TPP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으며 캐나다, 호주, 말레이시아, 멕시코, 칠레, 페루, 뉴질랜드,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경제협정이다. 참여국에는 비관세 등 혜택이 주어지며 원산지 인정도 12개국 간에 자유롭게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메가FTA는 중국을 필두로 16개국이 참여하는 RCEP이다. RCEP은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경제강국은 물론 인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호주,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이 참여국이며 올해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중·일 FTA가 지난해 11월 6차 협상까지 했지만 3개국의 요구사항이 상충돼 타결에 어려움이 많은 만큼 RCEP가 한·중·일 FTA를 대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미국이 주도하는 TPP와 중국이 주도하는 RCEP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저마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임을 주장하며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이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TPP와 RECP가 미국과 중국의 자존심 대결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는 RECP 참여국으로 협상을 하고 있지만 TPP에는 뒤늦게 참여 의사를 밝힌 탓에 참가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결국 한국의 TPP 참여를 결정하는 것은 TPP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미국과 두번째로 영향력을 가진 일본이다.

■신시장 확보·중간재 수출강국 도약
TPP에 참가하는 국가들의 GDP를 모두 합하면 세계 GDP의 37.1%를 차지한다. 또 무역비중은 25.7%, 인구는 11.4%에 이른다. 한국이 TPP에 참여하게 되면 그야말로 거대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TPP에 참여할 경우 우리나라 GDP는 발효 10년 뒤 1.7~1.8% 증가하며 무역수지는 연간 약 2억~3억달러로 개선될 전망이다.

이미 체결된 FTA의 불합리한 조항도 TPP로 개선할 수 있다. 일례로 한·아세안 FTA가 발효됐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은 자동차, 철강제품 등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목에 대한 개방을 유예하고 있다. 더 높은 수준의 개방요건을 지닌 TPP가 발효되면 기존의 한·아세안 FTA가 무력화되는 만큼 우리나라는 수출에 더욱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

새로운 시장을 확보해 제조업 부문에서만 약 5억8000만달러의 수출증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대표적으로 멕시코는 승용차, TV에 각각 30%, 15%의 고관세를 매기고 있는데 TPP로 이를 면제받을 경우 교역이 급증할 전망이다.

TPP의 누적 원산지기준 조항에 따라 중간재 수출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된다. 양자 FTA 체제하에서는 원산지규정에 따라 다른 국가에서 만든 제품은 비관세 등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TPP에 참여하게 되면 TPP 참여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은 모두 같은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지에 생산공장을 다수 진출시킨 우리나라로서는 양자 간 FTA보다 TPP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TPP 참여국 역시 비TPP 국가로부터 수입하던 중간재를 TPP 국가로 옮길 공산이 크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TPP에 참여하지 않게 되면 우리나라로부터 중간재를 구입하던 국가들이 TPP효과를 보기 위해 조달국가를 옮길 수 있다”면서 “참여를 해서 어떤 이득을 얻느냐보다 불참했을 때 어떤 손해를 보느냐의 관점에서 TPP 참여를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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