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뒤덮은 잿빛 공포… “대기오염, 노인 뇌(腦) 직접 타격해 치매 유발”

▲자카르타 중심부 대기현황. 이날 수도권 지역 대기질 지수는 최고 306에서 자카르타 대부분 지역은 230~250대를 보이고 있다. 사진 한인포스트

자카르타 수도권 최악의 대기질, 단순 호흡기 질환 넘어 인지 기능 위협
美 에모리대 연구팀 “미세먼지, 알츠하이머 직접 유발 가능성”
뇌졸중 병력 환자 취약성 뚜렷… “깨끗한 공기가 곧 치매 예방 백신”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와 그 위성도시들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이 최악의 대기오염 지역이다. 건기가 도래하며 정체된 대기 속에 축적된 자동차 배기가스와 산업단지의 매연은 도시 전체를 잿빛 돔(Dome)처럼 가두고 있다. 그러나 뿌연 스모그가 인간에게 주는 경고는 단순히 기침이나 호흡곤란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대규모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농도의 대기오염 물질은 노인의 뇌 신경을 직접적으로 파괴하여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침묵의 살인자’임이 드러났다. 자카르타의 숨 막히는 공기가 노년층의 기억과 인격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경고다.

◇ 자카르타의 잿빛 하늘, 치매의 그림자 드리우다

글로벌 대기질 분석 업체들의 데이터에 따르면 자카르타는 세계 주요 도시 중 대기오염도가 가장 심각한 수준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를 수십 배 초과하는 날이 빈번하다. 이러한 환경은 노인 인구에게 단순한 호흡기 질환을 넘어 치명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지난 2월 17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 메디신(PLOS Medicine)’에 게재된 미국 에모리 대학교 연구팀의 최신 연구 결과는 이러한 우려를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얀링 덩(Yanling Deng)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대기오염이 알츠하이머병 발병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18년 동안 65세 이상 미국 메디케어(Medicare) 수혜자 2,780만 명 이상의 의료 기록을 추적 조사했다.

전 세계적으로 약 5,700만 명이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은 가장 흔한 형태의 치매다. 학계에서는 이미 대기오염이 고혈압, 뇌졸중, 우울증 등 만성 질환의 주요 위험 요인임을 인지해왔으며, 이러한 만성 질환들이 치매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가 던진 핵심 질문은 “대기오염이 만성 질환을 유발하고, 그 결과로 치매가 오는 것인가(간접 영향), 아니면 오염물질이 뇌를 직접 타격하는가(직접 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 “오염물질, 뇌에 직접 침투”… 기존 통념 깬 분석

연구팀은 대기오염 노출 수준과 신규 알츠하이머병 발병 사례를 대조 분석하면서, 피실험자들의 기존 만성 질환(고혈압, 뇌졸중, 우울증 등) 유무를 정교하게 통제했다. 분석 결과, 대기오염 농도가 높은 환경에 거주하는 노인일수록 알츠하이머병 발병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점은 그 메커니즘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기오염은 고혈압이나 우울증 같은 만성 질환을 거쳐 알츠하이머를 유발하기보다는, 뇌 신경계에 직접적인 손상을 입혀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덩 교수는 논문을 통해 “이번 대규모 전국 노인 연구에서 우리는 미세먼지 대기오염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일반적인 만성 질환을 매개로 하기보다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자카르타와 같이 고농도 대기오염에 상시 노출된 지역에 거주하는 건강한 노인이라 할지라도, 단지 숨을 쉬는 것만으로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에 직면해 있음을 시사한다. 대기 중의 미세한 독성 입자가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을 뚫고 들어가 뇌세포에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신경 퇴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뇌졸중 병력 환자에게는 ‘치명타’

이번 연구는 개인의 기저 질환에 따른 취약성 차이도 명확히 보여주었다. 특히 과거 뇌졸중을 앓았던 병력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대기오염과 알츠하이머 발병 간의 상관관계가 더욱 강력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뇌졸중 병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뇌혈관 구조나 신경 기능이 약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대기오염이 가하는 추가적인 스트레스에 훨씬 더 취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고혈압이나 우울증 병력은 대기오염으로 인한 알츠하이머 위험을 유의미하게 증폭시키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환경적 위험 요인(대기오염)과 개인의 혈관 위험 요인(뇌졸중)이 결합했을 때 뇌 건강에 파괴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 깨끗한 공기가 ‘인지 건강’의 핵심 전략

자카르타 수도권의 대기질 개선은 이제 단순한 환경 문제나 호흡기 건강의 차원을 넘어섰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도시들에게 이번 연구 결과는 ‘깨끗한 공기’가 곧 치매 예방의 핵심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대기오염 규제를 강화하고 공기 질을 개선하는 정책적 노력이 장기적으로 노인 인구의 치매 발병률을 낮추고 인지 건강을 보호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가 시민들의 기억을 지우고 있다. 자카르타를 뒤덮은 뿌연 연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노인들의 뇌 속 시계를 빠르게 돌리고 있다. 대기오염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구체적인 실행이 지체될수록, 치매라는 사회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생활부/ 편집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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