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부터 코로나19 검사까지…의사·한의사 영역 다툼 계속

현대 의료기기 등 놓고 오랜 직역 갈등…법원 안팎 논란 이어질 듯

한국에서 의사와 한의사 간의 오랜 영역 다툼이 최근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의사의 초음파, 뇌파계 진단기기 사용을 사실상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최근 잇따르면서 양측의 여론전도 격화한 가운데 한의사의 코로나19 검사나 전문의약품 사용과 관련한 재판도 줄줄이 예정돼 있어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 초음파·뇌파계…법원서 연승 거둔 한의계

현대 의료기기 사용 등을 둘러싼 양한방 의료계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의료법에는 “의사는 의료, 한의사는 한방 의료”를 임무로 하고 의료인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칙’ 등에 따라 한의사 사용 제한이 명시돼 있지만 그밖에는 대체로 양측의 영역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법원 판례나 당국의 유권해석으로 경계가 지어지는 경우가 많고 이에 따른 갈등과 논란도 반복됐다.

최근 몇 개월로만 보면 분위기가 좋은 쪽은 한의계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4일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한의사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 판결 그대로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2016년 초음파 골밀도 측정기기 시연하는 김필건 당시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2016년 초음파 골밀도 측정기기 시연하는 김필건 당시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대법원이 한의사도 뇌파계를 이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지난 13일 수원지법은 X레이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한 한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이들 의료기기의 사용이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현대 의료기기의 제한 없는 사용을 주장해온 한의계는 잇단 판결에 환호하면서, 한의사 진단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등 후속 조치를 기대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미 한의 초음파 진단 급여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에도 나섰다.

한의협은 “하루빨리 한의사가 자유롭게 모든 현대 진단기기를 진료에 활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며 “관계당국은 국민은 건강 증진과 편익을 위해 법적·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의사단체 “국민 건강·생명 위협”…사기죄 고발까지

반면 의사단체는 최근 법원 판결에 대해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초음파 진단기기에 대한 파기환송심 판결 직후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해당 사건의 피고인인 한의사 A씨가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68차례에 걸쳐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했음에도 자궁내막암 발병 사실을 제때 진단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홍순철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파기환송심을 앞둔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자궁내막암은 골반초음파 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보일 때 자궁내막 조직검사로 확진이 가능함에도 2년간 한 번도 이를 시행하지 않은 것은 초음파 검사를 제대로 수행하고 판독하는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서울 한 한의원에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2년 3월 서울 한 한의원에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교웅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장은 “초음파는 CT나 MRI와 달리 시행자 의존도가 굉장히 높아 검사 중 실시간으로 병변을 찾아내지 못하면 추후에도 이를 확인할 수 없다”며 “사용은 쉬우나 시행과 결과 해석은 영상의학 영역에서도 최고 난이도의 검사법”이라고 말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한의사 A씨가 “초음파 흉내만 내서 자궁내막증이 자궁암으로 진행되도록 했다”며 지난 15일 업무상과실치상죄와 사기죄로 형사 고발하기도 했다.

◇ 신속항원검사·리도카인 관련 소송도 진행 중

의사와 한의사의 직역 갈등은 앞으로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난해 불거졌던 코로나19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RAT) 논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오는 11월 나온다.

지난해 3월 정부는 동네 병·의원 신속항원검사 양성 결과를 확진으로 인정하기로 하면서 한의원은 검사기관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자 한의사협회는 한의사가 의료인으로서 감염병 신고의 의무를 가지고 있음에도 검사가 제한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질병관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한 1심 판결이 오는 11월 23일로 예정됐다고 한의협은 전했다.

이에 앞서 11월 10일에는 국소마취제 성분인 전문의약품 리도카인을 사용한 한의사에 대한 형사소송 판결도 나올 예정이다.

일련의 판결과 한의사계의 제도화 요구와 관련해 정부는 일단 신중한 입장이다. 해묵은 논쟁인 데다 과거 의사와 한의사 단체장들이 단식 투쟁을 불사할 정도로 첨예한 쟁점인 만큼 정부가 나서 뚜렷한 결론을 내리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 관련 상황을 보고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생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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