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진 칼럼] “파격에 희망을 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6.12싱가포르 회담과 그 이후 상황은 다양한 외교적 파격(surprise)을 보여주고 있다. 외교관들은 파격을 싫어한다. 일시적 착시효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북한 핵 협상을 지켜본 필자는 오히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 행보에 희망을 걸고 싶다.

싱가포르 회담은 과거의 핵 협상과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최고지도자가 협상 전면에 나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까지 와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싱가포르에 앞서 중국을 찾았고, 미국 방문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북한이 핵. 미사일에 집착하는 동안 세계가 얼마나 변화하였는지 직접 목격하면서 협상에 임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비행기를 이용하고, 이번 주 세 번째 중국을 방문하는 것도 파격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 앞서 대 북한 “최대 압박”(군사, 경제재제, 대 중국 압박 등)을 직접 주도하였고, 보좌진의 건의를 무시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기로 결정하고 중대 고비 때마다 독자 결정으로 협상을 리드하고 있다. 회담장에서의 돌출 행동과 발언이 판세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최고지도자가 협상 전면에 나서
둘째, 협상 방식과 속도감이 전과 다르다. 지난 3개월 동안 북한과 미국이 다양한 실무 협상을 가졌지만 어떠한 합의도 도출하지 못한 채 행동이 먼저 나오고 있다.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었던 비핵화(CVID)의 “단계적이고, 동시적 이행”에 관한 합의 없이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 선언, 핵 실험장 폭파, 탄도미사일 시험장 폐쇄의사가 있었고, 미국의 한. 미 연합 훈련 및 전략무기 한국 배치 중단 의사가 일방적으로 천명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 비핵화, 후 신뢰구축 및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과거의 협상 틀을 깨면서 협상 방식을 바꾸고, 비핵화속도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30 년간 남/북한, 북/미, 6자 회담 합의는 오랜 실무 협상을 거쳐 주고받기의 균형점에서 최고지도자의 허가를 얻었다. 그 결과 훌륭한 합의서를 만들기도 하였지만 실행되지 못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보였다.

미국과 북한 지도자는 비핵화를 조기 매듭지어야 할 국내 사정을 안고 있다. 북한 내부 사정이 극한으로 가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미 의회 중간 선거와, 대통령 재선을 위해서 2년 반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스스로 내리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할 때 “악마는 세세한 것에 있다 “는 말과 같이 세세한 문제부터 들추어 협상의 추진력을 죽이기보다, 비핵화의 귀환불능상태(point of no-return)에 하루 속히 도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것이다.

셋째, 한국과 중국의 역할이 바뀌었다. 이제까지 북한 비핵화 협상의 중심에 중국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국이 북. 미 회담을 이끌어냈고, 한반도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협상이 본격화되는 이제부터 한국의 위치는 어디인가. 북한과 미국이 협상에서 어려움에 부딪히면 중매인 한국에게 몽니를 부리거나 어려운 숙제를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미국 세력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고 주한 미군 및 전략무기 배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주도하는 비핵화협상과, 그 결과로 생겨나는 새로운 지역 질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대보다 큰 걱정이 앞선다. 더욱이 우리 스스로 호랑이 등 위에 이미 올라 탄만큼 피할 길이 없다.

비핵화 조기실현에 집중했으면
그러나 능력의 한계를 감안할 때 한국은 비핵화의 조기 실현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다.
주변국과의 비핵화 전략 대화, 북한 개방 지원을 위한 논의 (일본 및 국제금융기관의 지원, 동남아 식 북한개방), 국제지지 세력의 확보 등 준비할 일이 많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착실한 준비는 비핵화의 일정을 앞당기고, 장래의 외교전략 자산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맞는 말이 생각난다.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은 “희망은 내 에너지의 원천이다(sources of my energy)”라고 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하는 일은 결과도 좋다고 하였다 (2004.10 한미 외교부 장관회의)  <내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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