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해는 요해로 스며들고
청란은 채란과 어울리는데
연꽃 스물일곱 떨기 늘어져
달밤 찬서리에 붉게 지네
곡자(哭子)
지난 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능땅에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한 바람 불고
숲 속에서는 도깨비 불 반짝이는데
지전을 날리며 너의 혼을 부르고
네 무덤 앞에다 술잔을 붙는다
너희들 남매의 가여운 혼은
밤마다 서로 따르며 놀고 있을테지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지만
어찌 제대로 자라나기를 바라랴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피눈물 슬픈 울음을 속으로 삼킨다
시작 노트:
조선시대 천재 시인의 비극적 생애를 살펴보자. 조선 중기의 천재 시인” 허난설헌”은 동시대 천재적인 문장가이며 진보적 풍운아인 허균의 누님이다. 강릉의 문학 가정에서 여성으로 태어 난 난설헌은 8세 때부터 시를 짓는 등 천재적 소질을 보이기 시작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는 여자가 한문 을 배우거나 시를 짓는 것은 철저히 금기시 하는 등 암혹한 시대였다. 그녀의 시는 조선에는 감히 존재할 수도 없었고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곳이 아이러니 하게도 중국의 고 서 박물관이였다. 동생 허균이 그녀의 시를 모아 책으로 만들고 임진왜란 때, 중국의 사신에 게 보인 것이 바다를 건너가게 된 동기였다. 허난설은 15세에 세도가 집안이였던 안동 김씨 문중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과거 시험으로 긴 세월 집을 비우는 남편의 사랑도 멀어지고 경상도 관찰사로 내려왔던 친정아버지가 객사한지 머지않아 두 아이를 모두 잃게 된다. 연이은 집안의 불행과 외로움 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듯 ‘몽유광상산’과 ‘곡자’ 를 짓고 27세에 요절하게 된다. 중국에서는 그녀의 오묘하고 깊이 있는 시를 시성 ‘이백’의 시에 비교 하며 지금도 조선어과에서 교재로 사용된다고 한다. 김준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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