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아름다울 당신

글. 양수려 / 코윈인도네시아. 한인포스트 여성분야 칼럼리스트

(2015년 1월 5일)

을미년(乙未年) 새해가 밝았다. 이달에는 유난히 한국으로 돌아가는 주재원 가족들도 많고, 거꾸로 인도네시아로 발령받아 오는 지인들도 꽤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지인은 한국에서 살 집과 아이들 전학문제로 분주하고 곧 자카르타로 오는 가족 역시 집이며 아이들 학교 문제 등으로 궁금한게 많다.

결혼이나 남편의 발령으로 삶의 터전이 타국으로 바뀌면 남성과 아이들의 삶은 물론, 여성의 삶에는 특히 더 큰 변화를 가져온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거나 조그맣게나마 자기 사업을 했던 주부들은 더 그렇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은 다니던 회사에 1년 휴직계를 내고 왔다. 하지만 남편의 인도네시아 근무기간이 1년이 될지, 5년이 될지 짐작할 수 없어 고민이다. 자신의 1년 휴직계 기한을 넘기게 되면 퇴사 여부를 결정해야하기 때문이다.

반면, 당당히 사표를 던지고 온 다른 한 지인은 한국에 돌아가면 재취업할 자신은 있지만, 이곳 생활의 몇 년 공백동안 업무감각이 뒤처지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하며 노력하는 눈치다.

또한, 아이를 키워놓고 창업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한 주부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창업이 여러면으로 쉽지만은 않아 선뜻 일벌리기가 한국만큼 쉽지 않다고 얘기한다.

기자, 디자이너, 약사, 동시통역사, 대기업 사원, 교사, 성악가, 작가, 방송인, 학원장, 무용가, 피아노 학원장, 스튜어디스, 출판인, 은행원… 알음 알고 지내는 자카르타 주부들의 전(前)직업들이다.

삶의 터전을 타국으로 옮긴 주부들의 변화를 대변하는 ‘전(前)’자가 붙은 단어들인 동시에 자카르타 땅에 묻혀있는 그녀들의 능력들이다. 또한 전직업과는 별도로 그림이나 공예, 음악 등 문화예술분야에 탁월한 감각을 소유했거나 일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의욕적인 여성들도 꽤 있다.

한국에서는 소위 경력단절여성, 다시 말해 능력있는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사회적 손실로 인식하고 여성가족부와 각 지자체에서 이에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정부지원, 지자체별 일자리센터, 재취업 교육 및 박람회, 관련 서적 출간 등 잔잔한 움직임이지만 전국적으로 얕게나마 일렁이는 느낌이다.

우연하게도 오늘 켠 라디오 어플에서도 이 주제의 사연이 소개됐고 오늘자 K신문에서는 관련서적 광고가 실렸다. 경력단절이라는 표현은 마음에 안들지만 어쨌든 고무적이다. 하지만 동포사회에서는 한국의 이런 움직임이 조금 먼 얘기인건 사실이다.

국가 지원이나 정책이 덜 미치는 지역적 우산 밖에 있는데다, 기업의 수요 부족, 취업비자 문제, 육아를 책임져줄 종일교육기관의 부재 등 한국에서보다 넘어야 할 구조적인 장애물들이 많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능력있고 꿈있는 여성들이여. 구조탓만 할 순 없지 않은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려는 노력에 집중하면 어떨까. 인니어와 더불어 인도네시아 문화를 깊이 배우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놓지않고 계속 고민하고 봉사하며 발전시킬때, 그리하여 탁월히 잘하게 될 때, 이 사회가 당신을 알아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자기자신이 그런 나를 대견해하며 알아줄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남편 일자리로 이곳으로 건너온 3,40대 여성뿐 아니라, 취업전쟁에 직면해있는 20대도, 100세 시대에 살고 있는 아직 창창한 5,60대도 마찬가지다. 2015년 을미년 새해에 세운 나를 위한 계획이 열두달후 세밑을 뿌듯하게 해줄 밑거름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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