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동남아를 여행했다. 여행 중 동남아 사람들과 대화에서 가장 관심을 끈 주제 중 하나는 인도·태평양지역에 대한 아세안 의견(outlook on the Indo-Pacific)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세안 정상들은 지난 6월 이 ‘의견’을 발표했고, 그 직후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태국 총리가 G20 오사카 정상회의에 참석해 그 내용을 설명했다. 아세안 10 개국이 작년 이후 진행 해 온 토론을 마무리한 ‘의견’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아세안의 공식 대응이다.
아세안의 ‘의견’이 제목만 보면 미국 전략과 비슷하지만 내용은 큰 차이가 있다. 미국 전략은 중국의 국내통치와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 행태를 비판하면서 중국 견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반면 아세안 의견은 포용(inclusive) 원칙과 이 지역의 경제협력을 담고 있다.
지역협력에 있어서 어느 국가를 배제하거나 배척하기보다 역내 모든 나라를 포용하는 원칙으로 중국 배제를 거부하고 있다.지난 8월 초 태국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회의에 참석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은 이러한 아세안 의견을 반영해서인지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군사. 전략 문제보다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군사·전략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중무역 전쟁, 화웨이 제재 등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근본적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고, 중국도 이 전략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군사 전략보다 포용과 경제 강조 한편, 아세안이 경제중심에 방점을 둔 것은 미중 대립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전술이다.
베트남이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과 대립하지만 중국과의 통상, 투자, 관광 증대 정책들을 취하고 있다. 필리핀은 미국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지원을 받기 위해 친 중국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1965년 친 중국 군사쿠데타를 경험한 결과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뿌리 깊다. 그러나 인프라 건설에 중국자본을 끌어들이려는 현 정부의 노력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다. 친 중국 세력으로 알려진 캄보디아마저 군사 설비를 설치하려는 중국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 나라 최대 수출 시장은 미국이기 때문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의 최대 관심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대외교역, 나아가 경제성장률의 퇴조이다. 따라서 올해 ARF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조기 타결과, 아세안 ‘의견’에 관한 논의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일 외교부 장관은 양국 무역 분쟁을 두고 3~4차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지역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기보다 국내정치의 선전무대로 활용한 것이다.
이와 관련 오는 11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정상회의가 한일 분쟁의 선전무대가 될까하는 우려도 있다.미국 의회는 작년 12월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공동 발의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 보다 강한 미국의 간여정책을 촉구하고 매년 15억달러씩 5년간 지원을 약속했다. 현재 미 정부는 이 지역 국가들의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
아세안은 이러한 미국의 압박을 예상하고 서둘러 ‘의견’을 발표하였다.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어떻게 대응할까? 우선, 미중 경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국은 군사. 안보에 추가하여 무역 및 기술 경쟁 등 전장(戰場)을 넓히고 있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결정하면 미중 경쟁에 점점 말려들게 된다. 또한 다음을 고려 기다리는 (wait and see) 대응을 주문하고 싶다.트럼프의 불분명한 의중과 행보 첫째, 트럼프 대통령 의중이 불분명하다.
트럼프는 지난 2년 동안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불참하고 아세안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두 대양의 연결고리에 위치한 아세안의 지지를 받지 않으면 동 전략이 지속되기 어렵다. 따라서 트럼프가 금년 11월 EAS에도 불참할지 등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둘째, 한국 능력의 한계이다. 한국은 지금도, 앞으로도 남북한 문제에 매달려있어야 할 형편이다.
또한 이번 아세안은 ‘의견’에서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지역주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러한 전환에 대비한 우리의 준비도 크게 부족하다. 한국 외교의 틀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현재의 틀로는 인도·태평양 지역, 미중 경쟁, 다자지역주의, 해양 협력 등 새로운 추세에 대응하기 힘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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