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사

(2014년, 4월, 7일)

손은희의 무지개단상(17)

까무잡잡한 피부지만 쌍까풀진 커다란 눈망울이 반짝이는 인도네시아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현지 촌에서 교회식구들이 치킨과 밥을 담은 도시락을 정성껏 나눠주는 봉사현장에 모처럼 따라가게 되였다.
흥겨운 찬양을 목청껏 따라하지만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는 아이들을 찬찬히 쳐다보고 있노라니, 몇일을 목욕을 안했는지 알 수 없는 눅눅한 머리카락과 때국물이 멍울진 얼굴과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사이사이 새까맣게 낀 때까지 하나 하나 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곁에 샤워실이라도 있으면 당장 데리고 들어가 샤워기물을 세차게 틀어놓고 머리에 샴푸를 듬뿍발라 머리카락을 시원히 감겨주고, 때로 얼룩져 냄새나는 옷가지를 홀랑 벗겨 바디샴푸를 듬뿍 발라 온 몸을 박박 문질러 때를 밀어주고 싶은 충동이 이는 아이들이다.
예쁘고 잘생긴 얼굴들이 얼룩진 때와 더러운 옷가지때문에 빛을 잃은채 우중충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니 평소 목욕탕에서 샤워기에 온 몸을 시원히 적셔가며 목욕을 하던 늦둥이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때로는 목욕하기 싫다고 투정도 부려 목욕탕에 억지로 밀어넣기도 해서 씻고 나오기도 하는 아들의 모습을 생각하자니 갑자기 ‘목욕’이라는 일상적인 것조차 참으로 호사스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욕탕은 커녕 세수를 할만한 수도조차 집안에 없는 비좁은 천막같은 곳에서 웅크리고 노는 아이들, 덥고 습한 인도네시아 기후속에서 땀으로 눅눅해져 냄새나는 몸을 씻을 곳이 없어 때국물 흐르는 옷가지를 입은 그대로 축축히 잠들어야 하는 아이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서너살때부터 길거리에 나가 구걸을 해서 허기를 채워야만 하는 아이들, 이렇게 그야말로 생존의 현장에 내몰린 아이들이 아직도 이 인도네시아 땅에는 무수히 많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음이 떠오르자 마음에 만감이 교차된다.
치킨집에서 치킨을 시켜먹고 남은 조각들이 냉장고에 뒹굴면 생각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리던, 그 한 조각 치킨과 밥을 얻기 위해 줄을 서서 초조히 기다리다가 도시락을 받아들자 환하게 미소지으며 돌아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일상적으로 먹는 한조각 치킨도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가 느껴져 온다.
맘껏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개운하게 말끔히 씻을 수 있고, 깨끗이 갈아입을 옷이 있고, 더우면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놓고 대자로 누워 편히 잘 수 있는 침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넉넉한 부자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참으로 많이 감사하며 살아야 함에도 참으로 많이 불평하며 살아온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갖지 못한 것에만 골몰히 집착하느라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깡그리 잊고 살고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망으로 시간을 소모하느라 넉넉히 호사스럽게 누리고 사는 것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메마른채, 늘 툴툴거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보다 갖고 있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보다 누리고 있는 것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기억하는 곳에 행복과 감사가 피여난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은 하루였다.
이 인도네시아 땅의 모든 어린이들이 맘껏 실컷 먹을 수 있고, 말끔히 입을 수 있고 , 깨끗히 씻을 수 있고, 편히 잠잘 수 있는 날들이 어서 빨리 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글. 손은희/하나님의 퍼즐조각 저자, 자카르타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