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 후폭풍, 체육개혁 뇌관을 건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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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라는 친숙한 이름이 듣기에도 거북한 ‘빅토르 안’으로 바뀌었다.
손에는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아닌 물에 젖은 피륙처럼 불편할 수도 있는 러시아 국기가 쥐어져 있었다.
그러나 조국을 등진 그에게 대한민국 국민들은 비난은 커녕 응원과 찬사를 쏟아냈다. 빅토르 안은 ‘역설의 영웅’으로 재탄생한 반면 그의 천재성을 내친 대한빙상경기연맹(회장 김재열)은 가시돋친 비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상대 맨꼭대기에서 러시아 국가를 부른 빅토르 안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빅토르 안에게 조국은 무엇일까. ‘핏줄의 조국’ 대한민국과 ‘유니폼의 조국’ 러시아는 과연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빅토르 안은 혼돈의 경계에서 “쇼트트랙을 사랑한다”는 말로 민감한 질문을 피해갈 뿐이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온통 ‘빅토르 안’ 열풍이다.

바람이 분 시점이 그야말로 절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문화체육관광부 신년 업무보고 자리에서 안현수 문제를 언급한 뒤 이틀만에 쇼트트랙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내 파장이 더욱 컸다.

당시 박 대통령은 “러시아에 귀화한 안현수 선수는 쇼트트랙 선수로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선수 활동을 하고 있다”며 “그 이유가 무엇이냐.

안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 줄세우기, 심판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한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빙상계는 좌불안석이다. 빙상연맹은 그 동안 꼬리를 문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한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구타사건, 파벌 문제, 짬짜미 사태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 앞서 불거진 성추행 지도자의 코치 기용 등에서 매번 구렁이 담넘어 가듯 안일하게 대처했다.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환부를 도려내는 적극적인 처방은 피했다. 결과적으로 연맹은 화려한 국제대회 성적으로 위기를 넘기는 미봉책으로 일관해 불신감만 키웠다.

‘안현수의 후폭풍’이 빙상계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파고를 높이고 있는 정부의 체육개혁 움직임과 연동돼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체육개혁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쳤지만 이번은 다르다.
대통령이 직접 체육개혁의 진행 사항을 챙기는 등 관심이 지대해 정부는 이번 기회를 강도높은 체육개혁의 적기로 판단하고 있다. 개혁이 늘 그렇듯 체육계에서도 저항세력이 만만치 않았지만 ‘안현수 사태’가 국민의 정서를 완전히 되돌려 놓았다는 사실을 정부는 주목하고 있다.

정부는 안현수 사태로 촉발된 체육계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지렛대 삼아 강력한 체육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이 한국 체육개혁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는 아이러니가 예고되고 있다.
왜 개혁은 ‘안현수’란 이름으로 있을 때 이뤄지지 않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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