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3일)
10월 28일 ‘청년 선서 기념일’;
*Kami Putra dan Putri Indonesia, Mengaku Bertumpah Darah Yang Satu, Tanah Indonesia.
(우리 남녀 청년들에 국가는 하나만 있으며
인도네시아를 국가로 승인한다)
*Kami Putra dan Putri Indonesia, Mengaku Berbangsa Yang Satu, Bangsa Indonesia.
(우리 남녀 청년들은 한민족이며 인도네시아민족인
것을 고백한다)
*Kami Putra dan Putri Indonesia, Menjunjung Bahasa Persatuan, Bahasa Indonesia
(우리 남녀 청년들은 공동체를 위한 언어로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하는 것에 합의한다)
10월 28일은 ‘청년선서 기념일’이다. 청년의 선서는 자카르타에서 청년단체들이 개최했다는 청년회의에서 선언되었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로 쓰여진 내용인 청년의 선서는 인도네시아국민들에게는 중요한 기념일이다. 이는 그때부터 다양한 종족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국민의 민족통일성에 대한 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청년의 선서가 있기 전에 인도네시아인들은 지역과 종족에 따라 식민지개척자들에 저항해왔으나 이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청년의 선서가 있은 후, 종족들은 힘을 합쳤고 인도네시아국민들은 갈 수록 강해졌는데 이에 결국 수카르노와 무하마드 하따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했던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국민이 독립을 달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이에 민족의 통일성은 너무 중요하며 이에 수카르노가 국가이념 5원칙 빤짜실라의 3절로 민족의 통일성을 언급했다. 이는 1945년 6월 1일에 발표되었으며, 그 후 이날을 빤짜실라 탄생일로 정했다. 국가이념 5원칙의 (빤짜실라)내용은 ‘첫째는 유일신을 믿는다. 둘째는 인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셋째는 민족통일성, 넷째는 국민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를 실시한다. 다섯째는 국민들에게 사회적 번영과 정의를 이룬다.’ 이다.
청년의 선서가 있기 전 자와족, 바딱족, 암본족, 술라웨시선의 지각있는 청년들은 단체를 구성했다. 이에 자와족은 Jong Java, 바딱족은 Jong Batak, 암본족은 Jong Ambon, 술라웨시섬에 있는 종족들은 Jong Celebes 라는 청년 (jong)단체를 구성하게 된다. Celebes라는 말은 술라웨시섬의 옛 이름이며 무슬림들은 이슬람청년협회라는 뜻인 Jong Islamieten Bond이라는 단체를 구성했다.
현재 국가이념 5원칙 빤짜실라의 제 3원칙인 Persatuan Indonesia (민족의 통일성)은 조코위대통령에게 의해 살람띠가자리 (3손가락이사)로 이어졌다. 이는 인도네시아국민들이 강하게 되도록 국민들이 통일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재 조코위 대통령과 JK 부통령 정부는 민족주의의 개념을 지니고 있는데 국가이념 빤짜실라와 민족의 다양성 (bhinneka tunggal ika)이 정부의 주 정책원칙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역사의 기록자료에 따르면 이 청년단체의회의는 9명으로 이루어진 위원회에게 주관되었으며 위원장은 인도네시아학생협회 (PPPI – Perhimpunan Pelajar-Pelajar Indonesia)출신 수곤도 조요뿌스삐또 (Soegondo Djojopoespito)이었으며, 부위원장은 자와족 청년단체 (Jong Java)출신 라덴 마스 조꼬 마르사이드 ( R.M. Djoko Marsaid)이었다. 비서는 수마트라 청년협회 (Jong Sumnateranen Bond)출신 무하마드 야민 (Muhammad Jamin)이었으며, 회계는 바딱족 청년협회 (Jong Bataks Bond)출신 아미르 샤리푸딘이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은 위원회 위원들을 포함해서 80여 명이 있었으며, 이들 가운데 에는 인도네시아의 애국가인 Indonesia Raya (대 인도네시아 )의 작곡가인 와개 루돌프 수쁘랏만 (Wage Rudolf Supratman)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회의에서 와개 루돌프 수쁘랏만은 Indonesia Raya 를 가사 없는 가락으로 연주했으며 이 노래는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실제로 와개 루돌프 수쁘랏만의 Indonesia Raya곡은 애국심을 고취시킨다는 이유로 네덜란드 식민지 정부에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국민들 사이에 암암리로 그 곡을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 애국가는 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의 독립선언이 있던 날부터야 공개적으로 불러질 수 있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애국심은 너무나 뛰어났는데 그들의 애국심을 semangat 45 (45 정신)이라고 부르며 민족인사로 Merdeka (독립) 이라 외친다.
인도네시아라야 (대 인도네시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
Indonesia tanah airku (나의 나라 인도네시아)
Tanah tumpah darahku (나의 출생지)
Disanalah aku berdiri (그곳에 내가 서 있어)
Jadi pandu Ibuku (나의 어머니를 지킨다)
Indonesia kebangsaanku (나는 인도네시아국적)
Bangsa dan Tanah Airku (나의 민족과 나라)
Marilah kita berseru (우리가 외쳐라)
Indonesia bersatu (인도네시아가 통일한다)
Hiduplah tanahku (땅이 존재하라)
Hiduplah negriku (나라가 존재하라)
Bangsaku Rakyatku semuanya (모든 종족과 국민)
Bangunlah jiwanya (정신이 일어나라)
Bangunlah badannya (몸이 알어나라)
Untuk Indonesia Raya (대 인도네시아를 위하여)
Indonesia Raya (대 인도네시아)
Merdeka Merdeka (독립, 독립)
Tanahku negriku yang kucinta (나의 사랑하는 땅과 나라)
Indonesia Raya (대 인도네시아)
Merdeka Merdeka (독립, 독립)
Hiduplah Indonesia Raya (대 인도네시아가 존재하라)
Indonesia Raya (대 인도네시아)
Merdeka Merdeka (독립, 독립)
Tanahku negriku yang kucinta (나의 사랑하는 땅과 나라)
Indonesia Raya (대 인도네시아)
Merdeka Merdeka (독립, 독립)
Hiduplah Indonesia Raya (대 인도네시아가 존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