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 JIKS 11
보이지 않는 손, 18세기 후반 영국의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다른 간섭이 없다는 조건하에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의 보이진 않지만 강력한 자원 통제 메커니즘. 그리고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시작됐던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는 “수요(욕구)” 충족과 “이윤 추구”라는 단순한 논리에 의해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현재는 온 지구를 지배하는 공통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고대 문명이 시작된 이래 존재한 수많은 사회 체계를 통일한 “이윤 추구를 향한 동기”는 매력적이다. 인류는 필요하다면, 돈이 된다면 지구상의 모든 자원의 주인처럼 권리(?)를 행사해 왔다. 나무를 베고 땅을 파헤치며 과학 발전을 통해 이룬 많은 편리한 것들을 누려오고 있다. 아마도 18세기 애덤 스미스 시대의 왕이나 군주보다도 나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을 것이고 이는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를 위한 시스템에 대부분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최근 신문 기사를 통해 “백신 특허권 유예”에 관한 기사를 접했다.
이스라엘 같은 백신 접종 리더 국가들에서 백신에 의한 코로나 전파 억제 효과를 보았다. 그리고 최근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백신 특허권 유예의견이 독일로 대표되는 국가들의 반대 의견으로 합의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특허권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간인 동기 부여를 통한 혁신의 원천으로서 보호받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재산권의 하나라는 것이 빌 게이츠 및 특허권 유예 반대 진영의 주요 논리이다.
빌 게이츠가 벌인다는 사회사업과 독일의 일본과 차별되는 역사 인식을 통해 조금 감명받았던 나는 그들이 말하는 논리의 이면에 인류애, 보편적 인식보다는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로 무장했다는 사실에 심한 실망감을 느낀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수천 명에 이르며 누적 사망자 집계 수는 33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다. 예를 들면 전시 상황과 같이 국가나 인류의 위기 상황이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한 한국전쟁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군인 100만 명 민간인 사망자 역시 100만 명 정도로 추정 중이라고 한다. 수치상으로 보았을 때 준전시 사항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국제 은행 소득 별 분류에 따른 국가별 1회 이상접종율- 부유한 국가들의 국민들은 더 많은 접종의 기회를 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소득 국가인 미국, 캐나다, 이스라엘과 같은 국가들의 접종율은 50%를 넘은 반면 나이지리아, 이디오피아, 토고와 같은 저소득 국가들은 5%대의 접종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전시상황에는 예외가 없는 듯 보인다. 이해는 간다. 달성한 성과에 부합하는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고 더 나아가 코로나 종식이 걸린 문제이다. 자본주의의 논리를 지키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연구이기에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