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 병이였다
시작 노트:
공광규 시인을 대중이 알 수 있도록 친근하게 만든 시를 꼽으라면 단연 ‘소주병’이다. 공광규 시인의 부친은 소 시장에서 상인들에게 흥정을 유도하는 거간꾼이라고 했다. 시인은 아버지의 직업과 소주병에 관련한 경험을 토대로 명시를 탄생시키게 되는 계기가 된 듯하다.
이 시가 돋보이는 것은 물리적 현상을 사유에 연결하는 기법이다. 1연에서 소주병은 누군가에게 잔을 베풀기 위해서 마침내는 속을 비워야 한다. 즉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무한한 희생과 맥을 같이하는 동질성을 표현하고 있다. 2연에서 쓰레기장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빈 소주병의 모습에서는 아버지의 힘들고 초라한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그리고 3연으로 가면서 빈 병에서 나오는 물리적 소리 현상과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비교하여 자연현상과 사유의 교합을 유도 하고 있다. 바람부는 겨울밤 마루 끝에 놓인 빈 병의 우는 소리는 흡사 외롭게 살아 온 아버지가 쪼그리고 앉아 우는 모습으로 인식하게 되는 대칭의 기법을 쓰고 있다.
공광규 시인은 우리가 무관심 할 수 있는 하찮은 빈 ‘소주병’을 보고도 아버지에 대한 희생, 연민, 눈물을 발견하는 극강의 천재적 관찰자임이 분명하다. 글: 김준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