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산불-연무 딜레마

자카르타에서, 2015년 10월30일 한상재

 

요즘 인도네시아 언론 매체들은 지루할 정도로 수마트라와 칼리만탄의 산불과 연무피해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되는 11월이 오게 되면 곧 비가 내릴 것이기 때문에 좀 참고 지내면 되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건기가 늘어지면서 면역성이 약한 어린이나 노약자가 사망하는 등 산불에 따른 연무피해는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팜 농장과 조림사업 허가권 취소까지 들먹이며 산불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산불은 여전히 계속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산불을 질러 대규모 개간을 하려는 기업농도 문제지만 관습적으로 불을 질러 농사를 지으려는 농민들도 문제입니다. 특히 이탄토 지역은 지표면 밑에서 불이 붙기 때문에 여간 해선 불을 끄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어째든 인도네시아 연무는 자국은 물론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심지어 태국까지 짙게 깔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마트라나 칼리만탄을 오가는 항공기들은 연착이나 아예 결항하는 회수마저 점점 더 늘어나고 상황입니다.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있는 싱가포르 창이 공항도 항공 운행에 차질이 있다고 하니까 인도네시아의 연무는 아주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연무는 단지 주민들의 호흡기 질환이나 항공기 이착륙 등에만 큰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무는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까지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더 큰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같은 개발도상국은 더 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지구의 탄소 감축을 내세우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주장한 바 있는 인도네시아가 오히려 탄소를 증가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유도요노 전 대통령은 2030년 인도네시아 탄소감축 목표를 16억 3,600만 톤으로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금년 건기에, 그것도 최근 26일 동안 무려 13억 5,400만 톤이나 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벌써 83%나 되는 탄소 감축목표를 까먹었다는 통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수치는 인도네시아 경제 규모보다 20배나 더 큰 미국보다 더 많은 탄소배출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은 현재 1천595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좀 있으면 ‘COP 21’ 이라고 하는 세계기후변화회의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인도네시아는 발리 세계기후변화회의 로드맵부터 지금까지 줄곧 선진국들의 탄소감축 의무만 주장해왔습니다. 상대적으로 산업화를 먼저 이룬 선진국들이 개도국들보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했기 때문에 개도국들을 지원해 탄소감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산불로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마치 우리속담처럼 ‘뭐 뭍은 개가 겨 뭍은 개 나무라는 격’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인도네시아가 오히려 산업화된 공장에서 배출하는 선진국들보다 더 많은 탄소를 산불에서 배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엔 토양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탄소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이탄토 지역의 탄소량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량은 전체 탄소량의 18%에 그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인위적 산불에 의한 탄소배출량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코위 대통령은 수마트라와 칼리만탄의 산불을 조기에 진압해야만 하는 절박함이 엿보입니다. 더 이상 국제적으로 할 말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그는 산불을 조기 수습해서 오는 파리 COP21 국제기후변화회의에서 당할 국제적 수모를 최소화하고 싶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