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손에 길러지는 아이들

(2014년 10월 27일)

장세라의
아동심리치료 이야기 (33);

장세라 41아동심리치료사 자카르타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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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반대의 이야기를 꺼내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그만큼 사회적 분위기를 거스르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양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대부분의 엄마들이 선택하는 양육방식이 옳아 보이고 좋은 것으로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 하지만 모두가 선택하는 방식이라고 하여 모두 옳고 좋은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보모(수스터)를 고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아기 자녀를 둔 가정은 물론이고 심지어 꽤 자녀가 성장한 경우에도 보모를 고용해 일상을 돕도록 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보모에게 아이들을 완전히 맡기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서서히 신뢰가 쌓이고 하나 둘 편리함을 맛보다 보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많은 부분 보모에게 자녀를 맡기게 된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모두가 그렇게 맡기니까 하는 생각으로 자녀를 맡길 경우, 생각지 못하게 잃게 되는 부분들이 있으므로 우리는 남에게 자녀를 맡기는 현상에 대해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잃어버리고 있는 시간

어느 부분 하나 부모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고, 잠자는 순간까지도 오로지 아이에게 모든 신경과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상이 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아동기 및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들 역시 아이들의 스케줄에 맞추어 하루하루를 ‘나의 생활’ 없이 보내야 하는 이 시기가 허무하고 괴로울 수 있다. 그래서 좀 더 이 시간들을 빨리 벗어나고자 보모를 고용하기도 하고 혹은 기관에 아이를 빨리 보내기도 하는데, 몸은 조금 편안해 질지 몰라도 이는 아이와 부모의 관계에 있어 결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이를 보완할만한 충분한 시간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의 발달과정에서 유일하게 부모에게만 집중하는 시기는 그렇게 길지가 않다. 성장할수록 자녀는 부모보다는 또래에, 또래보다는 이성에, 이성보다는 자신의 진로에 관심을 옮기게 되고 또한 살아가는데 바빠질 것이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자녀의 어린 시절 특히 유아기를 부모가 자녀와의 관계를 구축하는 결정적인 시기로 인식하고 조금만 견디어 낸다면, 어느덧 시간은 흘러 부모에게만 의존하던 아이들은 보다 건강하게 그 다음 관심사들을 위해 독립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자꾸 바뀌는 양육자

보모 고용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자주 바뀐다는 것이다. 한 집에서 오래 일을 하지 못하는 현지인들의 특성상 1년은 고사하고 한 달마다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 유아기는 주 양육자인 엄마와 애착을 형성하는 시기로 이 시기에 애착을 잘 형성하면 아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타인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양육자가 계속해서 바뀌게 되면 아이들은 혼란을 느끼고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하며 타인을 잘 신뢰하지 못하거나 늘 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즉 자신을 돌봐주는 보모를 양육자로 인식하였다가 계속해서 보모가 바뀌게 되면서 애착을 안정적으로 형성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자주 바뀌는 양육자로 인해 불안정한 애착을 구축한 아이들은 부모 및 타인과의 관계에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성격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권위 없는 양육자, 보모

보모는 매우 확연한 ‘권위 없는 양육자’이다. 부모들도 권위 있는 양육자가 되기란 쉽지가 않은데,고용된 사람이 아이들에게 권위 있는 양육자가 되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다.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심지어 화가 났을 때 보모를 때리고 유난히 투정을 부리는 이유도 양육자와 자녀 간에 있어야 할 양육자의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권위가 없는 양육자의 경우 아무리 아이의 잘못된 습관과 행동들을 교정하려 해도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행동과 습관들은 더욱 나빠질 수 밖에 없으며, 이를 부모가 교정해주려고 해도 이미 잘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나쁜 습관과 행동의 범위를 넓혀 서서히 부모의 권위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 비단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보모가 모든 것을 도와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자신도 모르게 하지 않게 되기도 하는데 이는 자녀가 독립적인 아이로 성장할 수 없도록 한다.

잊을 만 하면 일어나는 사건사고

물론 자녀를 부모가 돌본다고 하여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것과 타인이 자신과 전연 상관이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뿐 아니라 자녀를 보모나 기관에 위탁했다가 아이들이 폭력 및 학대를 경험하게 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부모가 없는 시간 보모가 아기를 안고 나가 돈을 구걸하는 모습이 발각되었다는 설이 있기도 하고, 기사가 초등학생 자녀를 성폭행 하여 임신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는 등 부모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아이들에게 잊을 만 하면 사건사고들이 일어나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얼마 전 한국에서 일어난 환풍구 사고는 우리가 얼마나 안전에 무심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었는데, 그렇듯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안전불감증 상태로 나의 편리를 위해 자녀를 너무나도 쉽게 남의 손에 길러지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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