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이한빈 박사는 한국의 미래학 분야를 개척한 분으로, 1970년 초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재임 때 향후 50년 내에 인도네시아는 동아시아의 강국이 될 것이라며 인도네시아와의 각별한 우방관계를 주문했다. 

 1973년 정식 외교관계 수립 후 한국-인도네시아 양국은 급속하게 가까워졌다. 양국 지도자에게는 반공과 경제개발이라는 공통된 국가 목표가 있었으며, 이들 공통점을 국가관계로 발전시킨 인사가 있었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사르오 에디 위보워(Sarwo Edhie Wibowo) 장군이다. 사르오 대사의 후임 인사들은 지속적으로 적극적인 대한 관계 증진에 힘썼는데, 양국의 긴밀한 방산 협력은 오늘날 전방위적 경협관계로 발전했다.

 왜 인도네시아인가? 
무엇보다 우리의 지정학적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한반도 주변의 4강은 우리의 숙명이며, 남북관계는 우리가 꼭 풀어야할 역사적, 국가적, 국민적 과제가 분명하다. 지속적인 대인도네시아 관계 증진을 통해 한반도의 취약점과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 대사와는 별도로 한반도 대사직제를 두고 있는 이 나라는 세계 4강의 유화정책 대상국인 동시에 북한이 중국 다음으로 꼽는 우방국이다. 

 경제협력 분야에서 한국-인도네시아 양국은 긴밀한 상생관계를 갖고 있다. 우리의 자본과 기술을 인도네시아의 자원, 양질의 노동력, 넓고 역동적인 시장성과 접목한다는 원론적 경협 관계를 넘어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동일한 수준으로 제조업 분야를 발전시킬 것을 정부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 점에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적극적인 자세를 갖추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에서 한류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유망한 나라다. 이 나라는 한류문화를 통해서 한국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다소 과도하며 때때로 무모한 목표의식과 경쟁심도 문화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새마을 운동, 금 모으기 운동, 기능올림픽 연패, 부패방지위원회의 역할, 세계적인 한류 스포츠 스타들의 활약 등에 매료돼 있다. 한류문화를 매개로 한 문화적 소통을 통해서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은 ‘우리도 한국만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요구되고 있다.
이 나라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이 나라 2억5천만(2013년) 국민 중 상위 20%(5천만 명)의 총소득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 5천만 명과 같다. 한국과 함께 G20 국가군에 속한 인도네시아에 대한 세계 경제전문기관의 향후 전망은 우리의 경우보다 낙관적이다.

 인도네시아는 외교대국이다. 비동맹운동의 주역이었던 이 나라는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최전선에 있었다. 캄보디아 내전을 평화체제로 대체했으며, 베트남 등 4개 후발 아세안 국가를 끌어들여 하나의 아세안(ASEAN)을 완성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동남아에서 미중(G2) 두 강국의 세력균형 조정자다. 

 인도네시아는 문화대국이기도 하다. 오랜 서양문화권과의 교섭으로 인해 동양문화권(국가주의와 공동선)인 이 나라는 폭넓게 서양문화(실용주의와 개인주의)를 포용하고 있다. 동서 문화권의 장점을 고루 보유하고 있고, 모든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신실한 종교관을 갖고 있다. 외형상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인 이 나라는 정교일치의 정치적 이슬람 대신 이슬람의 만인평등을 모토로 하는 사회적 이슬람을 추구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국제사회는 인도네시아를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된 이슬람국가로 보고 있다.

(Tuesday, August 26, 2014)

한여름 불볕더위가 이어지며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다산 정약용 선생이 쓴 시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쓴 시 ‘증문'(憎蚊 얄미운 모기)에는 ‘맹호가 울 밑에서 으르렁대도 코 골며 잘 수 있지만 모기 소리 귓가에 들려오면 간담이 서늘하단다’, ‘ 제 뺨을 제가 쳐도 헛치기 일쑤’, ‘넓적다리 급히 만져도 이미 가고 없어’ 등 모기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자세하게 묘사됐습니다.

  • 다산 정약용 증문 (憎蚊 얄미운 모기)

맹호가 울밑에서 으르렁대도
나는 코골며 잠잘 수 있고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있어도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모기 한 마리 왱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단다
부리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어이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
베 이불을 덮어쓰고 이마만 내놓으면
어느새 울퉁불퉁 혹이 돋아 부처머리처럼 돼버리고
제 뺨을 제가 쳐도 헛치기 일쑤이며
넓적다리 급히 만져도 그는 이미 가고 없어
싸워봐야 소용없고 잠만 공연히 못 자기에
여름밤이 지루하기 일년과 맞먹는다네
몸통도 그리 작고 종자도 천한 네가
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
밤으로 다니는 것 도둑 배우는 일이요
제가 무슨 현자라고 혈식을 한단 말가
생각하면 그 옛날 대유사에서 교서할 때는
집 앞에 창송과 백학이 줄서 있고
유월에도 파리마저 꼼짝을 못했기에
대자리에서 편히 쉬며 매미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흙바닥에 볏짚 깔고 사는 신세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 탓이 아니로다

한편 ‘증문’은 모기를 소재로 세태를 꼬집은 작품입니다.

호랑이와 뱀 같은 거대 권력의 횡포에는 화를 내지 못하지만 모기같이 말단 관리 횡포에는 크게 분노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소시민적인 모습을 자책하는 내용인데요.

또 ‘모기야 모기야 얄미운 모기야, 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라는 부분은 여름밤 시종일관 물어대는 모기를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에 빗대 꾸짖은 것입니다.

다산은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 탓이 아니로다’라며 결국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