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져온 혼란 중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촉발에 대한 논란이 있다. 모든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라면 무차별적으로 비판만 하다 보니 본질은 파악이 불가한 상태가 작금의 언론세상이다.
마치 ‘보호무역주의’가 ‘자국우선주의’와 동의어인 양 취급하다 보니 치열한 논쟁을 해야 할 이슈를 갖고 정치적으로 경제학을 이용한다는 느낌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트럼프의 주장은 America First를 외치는 자국 우선주의지 보호무역주의 와는 다소 구별되어야 한다. 얼핏 보면 이 두 단어는 같은 말처럼 보이며 실상도 이 둘을 아주 명확히 구분 짖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경제학적 접근을 한다면 보호무역은 분명 자유무역과의 논쟁을 위한 개념으로 봐야 하고 지금도 그 논쟁이 진행 중이지만, 자국우선주의라는 단어를 쓴다면 이는 오로지 정치적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필자도 경제학을 생각하면 이럴 때 참 학문적인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다. 수학과 물리학은 정의나 법칙이 항상 명확하다. ‘1 + 1 = 2’란 명제는 수학에선 언제든 참인데 반해 경제학은 언제나 참일 수가 없고, 엄밀하게는 참 이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 정의다.
인간의 심리와 시대적 트랜드가 작용하다 보니 거시적으로 경제학에는 사실만 있고 진실이라는 개념은 시대적 반영일 뿐이다.
보호무역주의는 봉건시대 말기 중상주의에 기원을 둔다. 고율의 관세, 장려금제도를 통한 수출장려 및 수입억제로 국부유출을 막고자 하는 취지도 엄밀하게는 맞는 말이고 경제불황이 닥친 시절에는 분명 잘 작동했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비교 우위와 열위의 산업제품을 상호간에 수출과 수입으로 교환을 하면 모두 이익이 증대되고 경제가 발전하는 시절을 맞이한 것이다. 1929년 대공황 당시만 해도 서구 진영은 자신들의 식민지 국가와 구성한 ‘블록경제’ 시절 이였지만, 1990년대 WTO 설립 이후 10여 년이 넘도록 자유무역이 보편화 되었다.
그러나, 어떤 경제정책도 적정 시기를 지나면 오용과 과용 같은 인간의 탐욕에 의한 변질화를 막기 힘들기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후 자유무역에 대한 시각이 변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활발한 인적 물적 교류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무역이 생산성 향상 및 기술개발 촉진 등의 순기능을 갖고 있지만, 소외된 산업의 종사자 들에게는 생계위협이, 그리고 특히나 국내 산업이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후진국 산업은 글로벌 선진국 기업들에겐 언제나 잠식만 당하는 ‘먹이’일 뿐이란 관점이다.
물론 보호무역도 장단점은 있다. 국내산업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시간확보와 균형발전 차원에선 긍정적임이 분명하나 글로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막을 수 있다는 약점을 피하긴 힘들다.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의 처방은 미국내 일자리를 뺏겼다는 진단에서 출발한다. 중국과 멕시코 등 경쟁국들이 수출을 통해 훔처간(?) 일자리를 되찾기 위함이라 하지만 이는 진단이 틀렸다.
단순히 1970년대 30%의 제조업 고용이 2015년에 8.6%로 감소한 건 사실이지만, 값싼 수입품으로 미국 소비자들 주머니가 두툼해지고 다른 국내 상품의 수요증가로 생산 고용을 늘린 건 쏙 빼먹은 왜곡이다. 엄밀하겐 수입 제조업 부분의 실업을 다른 산업이 전부 흡수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의 구리 광산 수출 정책만 봐도 보호와 자유무역간의 혼란의 연속이다. 2014년 국내 제련시설에서 가공하지 않은 금속원광의 수출을 금지하는 신광업법을 만들어 놓고 지금에 와서는 구리 값이 올라갈 기세가 보이자 수출허가로 확 돌아선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 정부지분을 현재 9.36%에서 51%로 늘리는 조건으로 지분매각을 요구하자 지금은 Freeport-McMoRan 업체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와의 수출계약에 ‘불가항력’을 선언한 상태다.
결국 작금의 세상도 보호냐 자유냐 논쟁 속에 미래의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과정의 순간으로 봐야 한다. 필자도 분명 자유무역이 보호무역보다 분명 효율적이고 발전적이라 믿는 사람 중 하나지만, 결코 100점 만점이 될 수 없음은 인정한다.
다만 이 치열한 논쟁과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경제학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현실의 경제학이 무시되지 않는 초월한 경제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