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인수에 무방비 노출된 방송사들…다음 차례는 종편?

연합뉴스

방송법, 일반주주엔 지분 40% 허용ㆍ언론사는 30% 제약
종편들도 리스크 노출…전문가 “기형적인 법 고쳐 30%로 통일해야”
공영언론→사기업 변경 “돈만 있으면 방송, ‘나쁜 선례’…최초승인처럼 엄격 심사해야”
을지재단 적대적 인수 시도에 “정당성 없고 법적 하자 분명”

을지재단 산하 을지학원의 연합뉴스TV 최대 주주 승인 시도로 현행 방송법의 구멍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언론사의 방송 지분 소유 한도를 일반 주주보다 낮게 규정함으로써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방송사 경영권이 기존 대주주 의사나 경영 실적과 무관하게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자본의 손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시도로 처음 확인된 것이다.

이에 따라 마찬가지로 주요 언론사들이 소유한 종합편성채널 역시 잠재적인 적대적 인수합병(M&A) 리스크에 노출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이에 전문가들은 을지재단의 시도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법제도 개선과 공공성을 고려한 결정을 주문했다.

22일 언론계에 따르면 방송법 제8조는 지상파, 종편, 보도전문채널의 방송사업자가 전체 지분의 40%를 초과해 소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간신문이나 뉴스통신사는 종편이나 보도전문채널의 지분을 30% 초과해 소유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을지학원이 소액주주 지분을 몰래 사들여 연합뉴스TV 전체 지분의 30.08%를 확보, ‘30% 룰’에 발이 묶인 연합뉴스(29.89%)를 제치고 최대 주주가 되겠다고 나선 것은 바로 이 조항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존 최대 주주인 언론사가 법정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별 문제 없이 방송 채널을 운영했더라도, 방송 영향력을 탐낸 민간 주주가 30%에 1주만 추가로 확보해도 방송사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방송 역사상 최대 주주 의사에 반하는 적대적 M&A 시도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영학이나 경제학에서 말하는 적대적 M&A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최대 주주의 의사와 무관하게, 협상도 하지 않고 지분 인수를 통해 최대 주주 자격을 얻겠다는 것은 적대적 M&A와 다를 바 없고 들어본 적이 없는 형태”라고 말했다.

방송을 운영하는 언론사에 최소한의 경영 방어권조차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법적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경우 본인과 특별관계자 보유 주식을 합산해 주식 총수의 5% 이상을 갖게 되거나 5% 이상의 주식을 이미 보유한 상태에서 추가 매수할 때 반드시 공시하는 것은 물론, 경영 참여 목적인지 단순 투자인지까지 공시해야 하지만, 비상장인 방송사에는 이러한 경영권 보호 장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보도채널뿐 아니라 신문사들이 최대 주주인 종편에서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종편들의 경우도 앞으로 여러 가지 환경 변화에 따라 을지재단의 시나리오를 차용한 경영권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드러난 법 제도상의 문제를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한국언론정보학회장과 한국방송공사 이사를 지낸 김 교수는 “종편에서도 같은 일을 당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면서 “법이 기형적이고 잘못돼 있음을 지적하고, 소유 지분 한도를 30%로 통일하는 방향의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연합뉴스TV 제공]

중장기적 법 개정과 동시에 당장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사 최대 주주 변경 심사를 요식행위에 그치지 않고 공공성을 엄격히 따지는 실질적인 인허가 절차로 운영하는 투트랙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무엇보다 공정성과 공익성이 중시되는 보도전문채널의 경영권이 공영언론사에서 영리법인으로 넘어가는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를 최소한의 법적 요건만 따지는 대주주 변경 절차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애초에 공영언론이 최대 주주라는 사실이 보도채널 승인의 배경이었던 만큼 을지학원의 최다액출자자 변경 요청에 대한 방통위 심사는 최초 인허가 못지않게 엄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보도전문채널을 YTN[040300]과 연합뉴스로 결정했을 때는 공적 소유라는 성격이 굉장히 강했다”면서 “지금 소유자가 완전히 바뀌어 공적 성격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준다는 것은 부동산으로 이야기하면 농지를 대지로 바꾸는 것과 같은 일종의 지목 변경”이라고 비유했다.

한국언론정보학회장 출신인 원 교수는 “보도채널을 YTN과 연합뉴스에 줬을 때는 공공성을 상당히 의식했다는 것인데 다시 최대 주주를 사기업으로 바꾸는 것은 이러한 정신을 깡그리 무시하는 셈”이라며 “그런 점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을지학원이 몰래 지분을 취득해 최대 주주 변경을 시도하는 데 대해 원 교수는 “어떤 정당성도 가지지 못한 결정”이라면서 “분명히 법적 하자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서중 교수도 “을지재단이 적대적 M&A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방송사 최대 주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면서 “기존 최대 주주의 의사에 반하고 방송법 허점을 이용해서 최대주주가 되겠다는 행위 자체가 자격 부족”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돈만 있으면 방송사업을 취득할 수 있다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방통위가 최대 주주 변경을 최초 심사와 같은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좋다”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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