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축구대표팀의 손흥민(26ㆍ토트넘 홋스퍼)과 야구대표팀의 오지환(28ㆍLG) 등이 병역을 면제받게 됐다. 그러나 운동선수의 병역 특례를 두고 갑론을박은 끝나지 않았다.
축구야구 결승 경기가 있던 지난 1일에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80여건의 관련 청원이 올라왔다. 국위 선양 기회를 위해 우수한 운동선수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팬들의 목소리가 있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이러한 논란은 운동선수를 위한 병역 특례 관련 법이 도입된 이후 45년째 이어지고 있다.
서울올림픽 앞두고 법에 구체화
운동선수에게 병역 특례 혜택을 주기 시작한 것은 1973년부터다. 박정희 정부는 법(병역 의무의 특례규제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국가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 선발을 거쳐 운동선수에게 병역 특례 혜택을 주도록 했다.
저개발국가로서 국제대회 우승으로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절박했던 시기였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딴 레슬링 양정모 선수가 유일하게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양 선수 외에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없어 이 법은 잊혀갔다.
운동선수를 위한 병역 특례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전두환 정부 때인 1981년이다. 그해 9월 88서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전두환 정부는 바로 다음 달 관련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올림픽ㆍ아시안게임 등에서 3위 이내에 입상한 경우 병역 특례 혜택을 주겠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특이한 점은 한국체육대 졸업 성적 10% 이내인 경우에도 혜택을 줬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흥행을 위해 메달권 선수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게 흔한 일은 아니라 특혜 시비는 적었다.
2002 월드컵 특례로 원칙 흔들려
미세 조정을 거치던 법률은 1990년 ‘올림픽 3위 이상 또는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에 대해서만 병역 면제 혜택을 주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
서울올림픽 이후 아시안게임ㆍ세계선수권 등에서 입상하는 선수가 많아져 병역 특례 대상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때 정해진 병역 특례 대상의 큰 틀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 틀이 흔들린 것은 2002년 한ㆍ일 월드컵 때다. 당시엔 월드컵 열기가 높았기 때문에 16강에 진출한 국가대표팀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여론이 컸다.
정부는 결국 병역법 시행령에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16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사람’도 특례 대상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8강 이탈리아전이 열리기 바로 전날이었다. 이 결정으로 박지성 선수 등이 군 면제를 받게 됐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국가대표팀이 4강에 오르자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국방부가 성급하게 대표팀에게 군 면제 혜택을 주기로 결정했다.
여론은 급격히 악화했다. 아마추어 종목 국가대표 코치협의회가 “아마추어 선수들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과 적은 급여 등의 악조건 속에서도 국위를 떨쳐 왔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네티즌들도 “정부가 어떤 기준으로 병역 특례를 주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결국 이듬해 월드컵 16강과 WBC 4강 진출은 병역 특례 대상에서 제외됐고, 1990년 상태로 돌아갔다.
오재원, 손아섭, 황재균, 나성범, 차우찬, 김상수 선수가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위해 2015년 세종시의 한 부대로 나란히 입소하는 모습. 이들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았다.
미필자 중심으로 대표팀 꾸리기도
운동선수의 병역 특례 논란이 다시 불거진 것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다. 특히 야구대표팀을 향한 비난이 컸다. 당시 대표팀은 24명의 엔트리 중 13명을 군 미필자로 채웠다. 일부 네티즌들은 “(대표 선발에) 미필자 우대 규정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게다가 병역 특례 혜택이 없는 2013년 WBC엔 참가를 꺼려 결국 참가하지 않았던 김광현ㆍ봉중근 선수 등이 아시안게임 엔트리엔 들어있어 논란이 일었다. 결국 대표팀은 사회인 야구선수로 구성된 일본과 일부 프로 선수만 포함된 대만 등을 쉽게 이기고 금메달을 땄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군 미필자인 나지완 선수가 부상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뽑혔다고 고백해 ‘군 면제 받으려고 대표팀 됐느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국회에서는 병역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9대 국회에서 무소속 김한표 의원(현 자유한국당)은 국가대표에 발탁된 기간 자체를 군복무기간에 포함해 주자는 법안을 냈다.
진성준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운동선수 등이 2달간 봉사활동을 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논란만 일었을 뿐 본회의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는 운동선수 병역 특례에 대한 법 개정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된 적은 없다.
<중앙일보 윤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