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 공급 경쟁 격화 속 정부, 수입원 다변화·유연화 방침 천명… 국내 비축량은 최소 기준 유지 중
인도네시아 정부가 국내 연료(BBM)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국가로부터의 원유 수입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바흘릴 라하달리아 에너지광물자원부(ESDM) 장관은 6일(월요일) 자카르타 중심부 에너지광물자원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와 같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 불안 상황에서 정부는 수입원을 가리는 사치를 부릴 처지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이같은 유연한 조달 기조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글로벌 에너지 경쟁 심화… “국가들이 서로 석유 차지하려 다투고 있다”
바흘릴 장관은 이날 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상황을 사실상 ‘석유 쟁탈전’으로 규정하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무엇인지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오늘날 국가와 정부는 연료 가용성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현재 많은 국가들이 서로 석유 공급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장관은 특히 글로벌 석유 공급망이 점점 더 타이트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같은 환경이 연료 조달 과정을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경쟁적이고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지금 우리는 (수입원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물량이 확보된다면 어느 국가로부터든 수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다른 국가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입찰 완료 후에도 소유권 빼앗길 수 있다”… 에너지 확보 전쟁의 냉혹한 현실
바흘릴 장관은 현재 국제 에너지 시장의 경쟁이 얼마나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며, 국제 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상상해 보십시오. 누군가 이미 입찰을 완료했고 물건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구매자가 나타나면, 트레이더나 판매 기업은 더 높은 입찰가를 부른 쪽에 물량을 넘길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현재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을 반영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원유를 포함한 에너지 자원의 공급이 수요에 비해 빠듯해지면서, 계약 체결 이후에도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제3자에게 물량이 넘어가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흘릴 장관은 이 같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정부는 여러 대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내 연료 공급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재확인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이 단순한 우려의 표명을 넘어, 실질적인 정책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그간 유지해 온 원유 수입원의 지정학적 선택 기준을 실용주의적 관점으로 대폭 완화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는 것이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 “성사되면 공개”… 양국 간 물밑 협의 진행 가능성
바흘릴 장관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이) 성사되면 알려드리겠다”고 말해, 현재 해당 사안이 실무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장관은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국가로부터의 수입 옵션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현재 진행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자제했다.
이와 관련하여 세르게이 톨체노프 주인도네시아 러시아 대사가 앞서 러시아 측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어 더욱 주목된다. 톨체노프 대사는 호르무즈 해협 폐쇄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국면을 맞아 러시아가 인도네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페르타미나(Pertamina)에 자국산 석유를 구매할 기회를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대사로서 아직 페르타미나 또는 에너지광물자원부로부터 직접적인 요청을 받은 바는 없다”면서도 “러시아 대사관은 러시아산 석유 구매에 관한 논의를 진행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산 원유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제재로 인해 국제 시장에서 상당한 할인율을 적용받아 거래되고 있어,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는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인도, 중국 등 서방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국가들은 이미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대폭 확대하며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
국내 연료 비축량, 현재는 최소 기준 유지… “단기 공급은 안정적”
한편 바흘릴 장관은 현재 인도네시아의 국내 연료 비축량이 정부가 설정한 최소 기준을 충족하고 있어 단기적으로는 공급 안정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우리의 재고는 국가 최소 비축량 수준에 있다. 신의 뜻에 따라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가 ‘최소 기준 수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비축량이 여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안전 마지노선에 근접해 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이는 향후 글로벌 에너지 공급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 연료 수급 상황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포하고 있다.
에너지 완충 비축(CPE) 시스템 구축 추진… 5월 후속 절차 개시 목표
장기적인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도 병행 추진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에너지 완충 비축(CPE, Cadangan Penyangga Energi) 시스템 구축을 통해 국가 에너지 비축 체계를 보다 견고하게 정비할 계획이다.
바흘릴 장관은 “해당 프로젝트는 현재 타당성 조사(feasibility study) 단계에 있으며, 정부는 오는 5월을 목표로 후속 절차를 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PE 시스템은 국제 에너지 시장의 가격 변동성이나 공급 충격이 발생했을 때 국내 소비자와 산업계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도록 완충 역할을 하는 전략적 에너지 저장 시스템으로,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핵심 인프라로 평가받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스템이 조속히 구축될 경우, 인도네시아가 향후 국제 에너지 공급 위기 상황에서도 보다 안정적이고 자율적인 대응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에너지 실용주의, 지정학적 함의는?
이번 바흘릴 장관의 발언은 인도네시아가 에너지 안보 문제에서 이념적·지정학적 고려보다 실용적 국익을 우선시하는 기조를 더욱 선명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비동맹 외교 노선을 유지해 왔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번 러시아산 원유 수입 옵션 개방 발언 역시 이러한 외교적 기조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실현될 경우,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적 마찰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봉쇄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를 꾸준히 모색하고 있으며, 제3국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에 대해 외교적 압력을 행사해 온 전례가 있다.
인도네시아가 이러한 외교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러시아산 원유 도입을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대안적 공급원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것인지는 향후 국제 에너지 시장의 흐름과 맞물려 귀추가 주목된다. (Tya Pramadania 기자/ 편집부, AI비즈니스센터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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