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관리사 업무 어디까지…노동계 “불명확해 갈등 소지”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계획안. 이르면 연내에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 근로자 약 100명이 시범적으로 서울에 있는 가정에서 가사·육아 일을 하기 시작한다. 고용노동부는 31일 로얄호텔서울에서 개최한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에서 이 같은 계획안을 공개했다.

“아이 돌봄 외에 동거가족 가사 업무도 수행하게 돼 있어”
노동부 “이용계약 작성시 업무범위 세부내역 명확히 할 것”

가정 내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곧 한국에 입국하는 가운데 노동계는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갈등 소지는 물론 인권 침해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16일 성명을 내고 “현재 시범사업 방안에는 여전히 이주 가사노동자의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인권 대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날 서울시와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오는 9월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17일부터 3주간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서비스 이용 가정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필리핀 현지에서 선발된 가사관리사 100명은 내달 입국해 4주간의 교육 후 9월 초부터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용 가정은 “가정의 상황에 맞게 아동돌봄 및 가사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고 노동부는 설명했다.

이날 민주노총은 “실행 가이드라인이나 현지 선발공고를 보면 아동 돌봄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노동과 집 밖에 아동을 동반하는 일이 포함돼 있고, 동거가족을 위해 가벼운 가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돼 있다”며 “아동 돌봄에 필수적인 노동 외에 다른 거의 모든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고용주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시킬 가능성이 높고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이를 거부하기 어려워서 갈등이 발생하거나 부당하게 노동이 강요될 수 있다”며 “직무를 상세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성명에서 “가사관리사가 아동, 임산부 외에 동거가족에 대해 ‘부차적이며 가벼운’ 가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한 것은 가사관리사 1인에게 가구의 모든 돌봄서비스를 전가할 수 있는 애매한 조항”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업무범위를 둘러싼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고, 돌봄의 전문화 추세에도 역행하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는 이주 가사관리사의 노동인권을 크게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필리핀에 본부를 둔 아시아이주자포럼(MFA)도 지난 5월 이번 시범사업 관련 성명을 내고 “업무 범위에 가사와 돌봄을 모두 포함된 것처럼 보인다. 명확성이 부족해 필리핀 노동자들의 착취와 저임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청소, 세탁 등 육아와 관련된 가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동거가족에 대한 가사업무를 부수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나, 이용계약에 사전에 명시된 업무를 수행한다. 이용자가 직접 임의로 업무지시를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비스 제공기관과 이용자 간 서비스 이용계약 작성 시 업무 범위의 세부 내역을 체크리스트 형태로 구비해 명확히 할 계획”이라며 “이용자를 대상으로 이용계약 외 지시금지 등 준수사항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했다”고 밝혔다.

한편 노동계는 필리핀 가사관리사에 대한 철저한 지원과 인권 대책 수립도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개별 가정에서 여성 이주노동자 혼자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만큼 더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시범사업 6개월 이후 고용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와는 별도로 법무부가 국내 체류 외국인력이 가정과 직접 계약해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준비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노총은 “최저임금을 비롯한 노동법을 적용하지 않고 개인 간 거래라는 비공식시장을 확대하려는 시도”라고 규탄하며 “밀실행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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