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가 우리의 소위 ‘핫플’이 되고 있다는데, 자카르타에 대사로 부임한 뒤 그 핫플의 열기를 체감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짧은 기간 동안 우리 기업들의 인도네시아 바라기가 한류 열기에 못지않다는 것을 실감하는 가운데, 인도네시아 정부 고위관리·정치인·기업인들의 한국 방문이 잇따르고 있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인도네시아는 1945년 독립한 이래, 동남아의 종주국으로서 나름의 위상을 키워 왔다. 하지만 그간 우리에게는 이슬람이라는 이질적 문화 탓인지, 그다지 가깝게 다가오지는 못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는 두 나라 사이에 오랜 교류의 역사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14세기 후반~15세기 초 인도네시아 자바섬 마자파힛왕국이 조선에 사신을 보낸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한인 동포사회의 태동은 1920년 독립운동가 장윤원 선생이 자카르타에 첫발을 내디디면서부터다. 이후 한인사회는 인도네시아의 독립 영웅 양칠성, 인도네시아 연극영화계의 대부 허영을 배출하는 등 현지 사회에 적응하면서 그 뿌리를 내려 갔다.
칼리만탄의 별로 불리던 최계월 회장이 이끈 남방개발과 코데코에너지, 지금도 한인 기업의 맏형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코린도그룹 등은 1960~1970년대 한국과 인도네시아 경제개발 역사와 궤를 같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르워 에디 위보워 초대 주한인도네시아 대사의 사위는 유도요노 제6대 인도네시아 대통령이다. 주한대사였던 부친을 따라 유년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아니 유도요노 여사 덕분인지, 유도요노 대통령은 재임 중 5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
그뿐인가. 1970년대 인도네시아가 자연재해를 겪자 한국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쌀을 대여해 주었고, 오일쇼크 이후 원유 확보가 시급했던 우리에게 인도네시아는 안정적인 원유 공급을 약속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맞이해 한국은 인도네시아에 산소발생기 등 방역물품을 제공했으며, 인도네시아는 한국에 요소수 대란이 났을 당시에 신속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국은 2017년 동남아 국가 중 최초로 인도네시아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게 된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한 전략’과 ‘한-아세안 연대구상’를 실행하는 데 있어 인도네시아는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올해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아세안을 성장의 중심(Epicentrum of Growth)으로 만들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나가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가 아세안과 실질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인도네시아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인도네시아는 2045년 세계 5위(2021년 16위) 대국을 목표로 원자재, 제조업, 4차 산업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범정부적인 성장전략을 가동 중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미래지향적 방향으로 한 차원 높은 협력을 도모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간 우리가 중점을 두어 온 자원개발과 제조업 투자 중심에서 탈피해 IT, 서비스, 바이오헬스, 기후변화,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에서 서로 윈윈이 되는 방향으로 협력의 지평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향후 50년의 양국 관계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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