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27 닥친다면…” 한국 질병청 미래 감염병 대비 한창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 커뮤니케이션센터에서 출입기자단이 역학조사관 역할을 맡아 '코로나27' 상황을 가정한 확진자 역학조사 실습을 하고 있다. 2023.3.30. [질병관리청 제공]

‘방역 최전선’ 역학조사 실제로 해보니…기자들도 진땀
코로나19 이전 86명이던 역학조사관, 606명으로 급증
“지금은 잠깐의 휴식기”…5월 중장기 대응계획 발표

“4년 전에도 결국은 셧다운이었잖아요. 이번에도 문 닫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파서 죽는 게 아니라 숨이 막혀 죽게 생겼다고요.”

지난 27일 오후 한 회의실에서 새어 나온 고성이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 커뮤니케이션센터의 고요를 깼다.

이곳에서는 2027년 3월, ‘코로나27’로 명명된 새로운 바이러스로 인해 또다시 감염병 위기를 맞은 가상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역학조사 인터뷰 실습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날은 질병관리청이 연 출입기자단 대상 감염병 예방관리 아카데미의 일환으로, 기자단이 역학조사관 역할을 맡아 15분 제한 시간 내에 이름, 나이, 주소, 직장명, 증상 유무, 접촉력, 접촉자 명단 등을 확인하기로 했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 정보를 얻어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확진자 역할을 맡은 배우는 이름과 나이를 묻는 말엔 ‘똑같은 걸 돌아가면서 몇번째 묻느냐’며 화를 냈고, 접촉자를 묻자 ‘가게에 온 손님이 수백명인데 다 조사할거냐’고 했다가 나중엔 ‘이러다 손님 다 끊긴다. 그냥 좀 봐달라’고 읍소했다.

증상에 대한 답변은 계속 바뀌었지만 ‘어차피 유행 초기에만 이렇게 조사하고 나중에는 코로나19 때처럼 다 그냥 둘 텐데 내가 왜 이런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느냐’며 화를 내는 통에 증상을 캐물을 수도 없었다.

조사지를 3분의 1도 채우지 못하고 인적사항만 묻다가 제한 시간이 끝났다.

나름 인터뷰 기술이 있다고 자신했던 기자단은 진땀을 뺐고, 박신영 질병청 역학조사관은 “이 정도면 양반이다. 배우분이 오늘은 좀 살살해준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실습은 수습 역학조사관들의 교육 과정 중 하나로, 코로나19가 사그라든 지금도 수시로 진행 중이다.

이상원 질병청 위기대응분석관
이상원 질병청 위기대응분석관

(오송=연합뉴스) 이상원 질병청 위기대응분석관이 지난 27일 기자단을 대상으로 역학조사관의 업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3.3.30. [질병관리청 제공]

역학 조사는 국내 코로나19 유행 초기 방역 전략인 3T(검사·추적·치료) 중 ‘추적'(Tracking)에 해당한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시기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해 방역조치를 하고 접촉자를 찾아내 격리함으로써 확진자 급증을 막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환자의 진술이 가장 기본 토대가 되지만, 100% 신뢰할 수는 없다. 기억이 불명확할 수도, 상황에 따라 무엇인가를 감추려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드사용 내역이나 휴대전화 위치추적, CCTV 등이 동원된다.

‘K방역’의 주역이라고 불릴 만큼 국내외에서 관심을 받았지만, 외신에서 지적했듯 개인정보의 문제가 남아있다. 그래서 역학조사관은 조사 때마다 늘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사이에서 줄을 탄다.

박 조사관은 “코로나19 유행의 ‘학습 효과’로 역학 조사가 되려 더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팀장으로 방역 최전선에 섰던 박영준 전 역학조사분석담당관은 “역학조사는 처벌이나 감시가 아닌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모니터링”이라며 “코로나19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괄적이거나 획일화된 통제보다는 적시 정보공개와 소통 등으로 자율적으로 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 말 86명(중앙 32명, 시도 54명)이었던 역학조사관 수는 현재 606명(중앙 107명, 시도 116명, 시군구 383명)으로 급증했다. 정부는 새로운 감염병 위기에 대비해 현재의 역학조사관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다.

청주 오송에 조성된 첨단의료복합단지 전경
청주 오송에 조성된 첨단의료복합단지 전경

[충북도 제공]

이상원 질병청 위기대응분석관은 “코로나19 유행이 거의 끝나간다고, 감염병 위기가 끝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저희가 보기에 지금은 잠깐의 휴식기일 뿐”이라며 “너무 빨리 평화에 도취해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무기는 백 년 동안 쓸 일이 없다고 해도, 단 하루도 갖추지 않을 수 없다'(兵可百年不用, 不可一日無備)는 정약용의 목민심서 내용을 인용하면서 “코로나19가 끝나도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2019년 코로나19 등 2000년 이후만 해도 여러 차례 세계적인 감염병 유행이 발생했다.

정부는 세계적으로 신종 감염병 발생 주기는 줄어들고 그 규모는 확대되는 경향이 보이는 만큼 다음 감염병 대유행을 대비한 계획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고 보고, 감염병 대응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오는 5월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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