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의 나라, 대한민국?

이신욱 박사 ▲ 이신욱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정치학 박사

(2015년 1월 26일)

누구나 새해가 되면 새로운 희망을 찾아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가족끼리 모여 덕담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지나간 한해를 아쉬워하며, 다가올 한해를 기다리는 좋은 시간들이다. 많은 사고와 슬픔이 우리 마음을 짓눌렀던 갑오년이 지나고 을미년 새해를 맞아 모두가 즐거운 시간에 우리 사회는 또 다른 논쟁에 휩싸여 있다. 이른바 ‘갑과 을’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갑’에 대한 우리 사회에서의 인식은 지배, 권력, 부 등으로 요약되는 반면, ‘을’은 피지배, 서민, 피치자 등으로 구분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갑을 관계’라 함은 주종관계를 뜻하는 말로 현재는 손님과 직원의 관계, 회사와 직원의 관계에서 주로 쓰이고 있는 표현이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우리 사회의 갑을논쟁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소위 ‘땅콩회항’에서부터 백화점 주차직원에 대한 굴욕적인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서 연초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급기야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거듭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소위 가진 자들의 횡포에 많은 국민이 불편해하고 있고, 이들의 전횡을 징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 알려진 백화점 주차직원에 대한 손님의 굴욕적인 행패는 지난 연말 보았던 영화 ‘카트’의 한 장면이 떠오르게 해 마음이 몹시 무겁다.

이 영화에는 마트 계산원의 불친절에 대해 손님이 사과를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마트 직원은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내이며 어머니지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굴욕적인 사과를 해야 했다. 바로 전형적인 갑의 횡포다.

무엇이 문제인가? 왜 이러한 현상이 대한민국에 일반화되고 있는가? 왜 갑은 횡포를 부리고, 을은 그 횡포를 감내해야 하는가?

오래전부터 ‘손님이 왕’이라는 구호를 기업들은 여과 없이 써오고 있다. 손님을 왕처럼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행동은 어떠한가? 돈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갑’이 되어 또 다른 ‘을’에 대한 횡포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서비스’에 대해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비스는 받는 것이다’, ‘손님이 왕이다’, ‘친절로 봉사하겠다’는 표현은 기업들이 손님들에게 일방적으로 하는 표현에 불과하지만, 손님들은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만 누리면 그만이다’, ‘나만 손해 안 보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은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낳아 자신이 한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는 결과를 초래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서비스는 ‘상호 존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서비스를 수직관계로 오해하고 있다. 이는 백여 년 전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시절의 생각들이다. 오늘날 서비스는 ‘수평관계’에서 나오는 것으로 상호존중과 인간관계 형성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을’의 마음이 불편해서 어떻게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대한항공의 조현아 전 부사장과 백화점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굴욕적인 사과를 요구한 손님에게 묻고 싶다.

러시아 제국의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훈육했다고 한다. “칭찬은 큰소리로, 꾸중은 작은 목소리로 하라” 흔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꾸중은 그 반대다. 꾸중하는 ‘갑’의 입장에서는 별일 아닐지라도, 꾸중 듣는 ‘을’의 입장에서는 부끄러움과 함께 치욕적인 일이 되기 쉽다.

따라서 꾸중도 절제가 필요하며 평등한 입장에서 사려 깊게 해야 하는 것이다. 평등한 입장에서의 사과는 받은 사람에게는 기쁨이, 하는 사람에게는 고마움과 뉘우침이 있다하겠다.

지난여름, 한국을 방문했던 교황 프란치스코 1세에게서 우리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갑’의 입장에 있을 수도 있었던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이 ‘을’과 동행하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는 점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의 제목이다. 소설에서 천사 미카엘에게 신이 주었던 세 가지 질문 중 마지막 하나다. 신의 질문을 받은 미카엘 천사는 마지막 질문이 매우 어렵고 곤란했던 듯하다.

미카엘이 찾아낸 답은 바로 ‘사랑’이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것을 보며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신의 질문에 새해를 맞아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또 다른 갑이 되어 을을 핍박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비판하고 있지는 않은지, 상대방의 실수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하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과 백화점 직원을 무릎 꿇린 두 모녀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갑’들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한다. 또한 그들의 진정어린 사과를 우리는 ‘용서’로 화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우리의 답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14년 갑오년이 가고 2015년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갑과 을’의 해가 아닌 ‘사랑’의 날들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날들은 ‘갑과 을’이 아닌 ‘평등과 존중’ 그리고 사랑이 되기를 바란다.
<재외동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