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6일)
애정과 허용
애정과 허용은 다르다. 이를 혼동해서 생각하거나 묶어서 생각하시는 부모님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이런 생각과 양육태도를 가지고 계신 부모님들을 만나보면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무조건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양육에 방향이 뚜렷이 있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음으로 자녀와 갈등을 만들만한 요소를 애초부터 없애는 것이다.
양육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기도 하고, 아이들을 감당하기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는 경우에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애정과 허용은 별개의 것으로 반드시 구분하여 생각해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너의 모든 것을 허락한다는 말은 다시 말해 모든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허용적으로 자녀를 양육할 경우, 아이들은 어쩌다 한 번이라도 자신의 행동을 제한하는 부모에게 엄청난 분노를 표현하게 된다.
이미 부모가 애정과 허용을 묶어서 양육했기 때문에 아이들 역시 ‘사랑한다면 내 행동을 모두 허용해 주는 것이 맞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행동을 제한 한다는 것은 이 아이들에게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거부의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
특히 집이 아닌 학교나 외부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제한을 받거나 행동을 지적 받게 되면 이 아이들은 견딜 수 없는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더욱 문제행동을 일으키거나 학교 규율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거나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엄청난 분노를 표현하기도 하며 감정이 상해 막상 집중해야 할 학업이나 활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애정과 허용을 분리하여 생각하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부모’를 위해서 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허용적으로 기르는 부모들은 ‘사랑한다면 (당연히 아이들도) 나의 의견과 행동에 협조하고 허용적으로 따라주어야 해’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부모의 말이나 의견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면 ‘아이들로부터 거부당했고 아이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부모도 사람이기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 듯 보이고 나를 자꾸만 거부하는 자녀에게 ‘미움’이라는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미워하는 감정은 씨앗이 되어 다른 방식으로 자녀에게 전달되고 자녀는 다시 부모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이 악순환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계속되어 관계를 무너뜨리곤 한다.
무너지는 부모
애정과 허용을 구분 지어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부모도 공부를 해야 한다. 너무 많이 허용적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이 ‘사랑’이 아님을 깨닫고 사랑을 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애정과 허용을 오래도록 구분하지 못하고 방향 없는 양육을 계속하게 되면 서서히 아이들은 부모의 권위를 침범하게 된다. 그러게 무너진 부모의 권위는 윽박지르거나 이따금 폭발하여 ‘어떻게 그래!’라고 분노를 표현해도 되돌려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일정한 규정과 제한 안에서 보다 안정감을 느끼고, 반대로 무조건 허용적인 환경에서 더욱 큰 불안을 느낀다. 사랑을 주지만 해도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명확히 구분 지어 줄 수 있는 부모를 아이들은 신뢰한다.
정말 이 많은 일들이 단지 부모가 허용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일일까 싶기도 하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훈계차원으로 때린다는 말이다. 과하게 허용적인 양육태도 역시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마음의 폭력일 수 있다. 내 스스로 좋은 부모라는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잘못된 양육습관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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