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유독 심한 동아시아 국가들, 왜 그럴까

“급속한 저출산으로 인해 우리 나라는 사회 기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23일 일본 정기국회의 첫 문을 여는 중의원 본회의 시정연설에서 출산율 저하로 커다란 사회적 위기에 빠진 일본 사회의 현실을 짚었다.

그는 이 위기에 맞서기 위해 육아 지원은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육아에 참여하는, 그동안 해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을 실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미국 <시엔엔>(CNN)은 이런 현실을 전하며, 저출산 문제는 일본뿐 아니라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전체를 가로지르는 주요 걱정거리라고 짚었다.

1961년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일시적으로 인구가 줄어든 뒤 61년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중국,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 등도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제, 유엔 경제사회국이 지난해 7월 내놓은 ‘유엔 세계 인구 전망 2022년’ 보고서를 보면, 동아시아의 저출산 위기가 유독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세계 238개국의 합계 출산율(2021년 기준)을 낮은 순으로 열거하면, 세계 10위권 내에 홍콩(1위·0.75명), 한국(2위·0.88명), 싱가포르(5위·1.02명), 마카오(6위·1.09명), 대만(7위·1.11명), 중국(10위·1.16명) 등 6개국이 포진해 있다. 세계 평균 ‘합계 출산율’(15~49살 가임기 여성 1명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아이 수)은 2.3명이지만 동아시아 주요국은 1명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가 국가 존속의 위기를 우려한 일본은 이들 나라보다 그나마 나은 1.3명(19위)이었다. 상위 20위권 안의 국가는 동아시아 7개국, 유럽 3개국(우크라이나·이탈리아·스페인)을 빼면 대부분 군소 도서 국가들이다.

전세계가 산업화되며 공통적인 저출산 현상을 겪었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이 유독 더 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대만 영자 신문 <타이베이 타임스>는 지난 16일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출산율이 낮은 것은 높은 양육비와 집값 등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이 지역의 깨지지 않는 ‘유교 문화’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이 문화권에선 육아와 가사를 특정 성별의 책임으로 돌리다 보니, 여성들의 경력 단절 현상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출산을 기피하는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국제 인구 저널들도 저출산 위기를 겪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유교 문화권’(Confucianism)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지역에서 유교는 종교이자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2천년 이상 사회 전체에 윤리 원칙을 제공해왔다.

학자들은 그에 따라 이 지역에 △성에 관한 도덕적 엄숙주의 △엄격한 성 역할 구분으로 한쪽 성에 집중되는 육아 부담 △사회적 성취를 중시하는 입신양명 문화 △과거제 전통으로 인한 학력주의 △삶의 만족도보다 근면성실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등 출산율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고유의 특징’이 있다고 지적한다.

앨리스 옌신 정 대만 국립 연구소 ‘시니카 아카데미’의 인구통계학자(박사)는 ‘동아시아의 초저출산 현상: 유교와 그 불만’(2020)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동아시아 사회의 독특한 가족 형성 패턴과 저출산의 연관 관계를 설명했다.

그는 혼외 출산을 금기시하는 유교의 가족제도를 다른 문화권과 구별되는 가장 주요한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지난해 6월 오스트레일리아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도 “동아시아엔 혼외 출산 개념이 없다.

결혼하지 않으면 출산도 없다”며 “미혼·비혼 출산을 금기시하는 이 국가들의 유교적 이념은 매우 강력한 합의를 형성하고 있고 전 세대에 걸쳐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전역에선 경제 발전으로 인해 최근 수십년간 남녀 모두 평균 결혼연령이 상승했다. 결국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데, 결혼이 늦다 보니 저출산이 보편화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학력주의(credentialism)를 저출산을 불러온 사회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짚었다. 과거제도의 전통으로 인해 유교 문화권에선 많은 이들이 시험 준비와 자격증 확보를 위해 젊은 시절을 보내는 경향이 있다.

학문적 성취와 입신양명을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로 가르치다 보니, 많은 이들이 선호도가 높은 소수의 일자리와 직위를 얻기 위해 젊은 시절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게 된다. 그에 따라 결혼과 출산이란 생애주기 과업은 후순위로 밀리고 말았다는 게 정 박사의 견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5월 저출산의 원인으로 교육비 문제를 짚었다. 동아시아에선 부모가 자녀를 위해 높은 교육비를 내며 생활비를 줄이는 게 흔한 일이다 보니 아이를 낳기 망설인다는 것이다.

영국의 독립 연구자 루시 크레한은 이 매체에 “중국, 싱가포르, 한국 등에서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을 위해 사교육을 받으며, 부모가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켜줘야 한다는 압력이 가중된다”며 “이는 가족들의 생계비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같은 아시아라도 유교 문화권이 아닌 국가들은 저출산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의 출산율은 2.75명이고, 불교 국가인 베트남은 1.94명이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1.80명), 인도네시아(2.18명) 등도 비슷한 수준이다. 힌두 문화권인 남아시아의 인도(2.03명)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3.47명),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3.08명), 우즈베키스탄(2.86명) 등도 2~3명대에 이른다.

대륙별로 보면, 북아메리카(1.64명)와 라틴아메리카(1.86명) 역시 상황이 양호한 편이고, 개발이 더딘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4.6명)과 북아프리카·서아시아(2.8명)는 세계 평균치보다 높다. 서아시아는 이란(1.69명), 이라크(3.5명), 사우디(2.43명) 등 세계 평균치 안팎으로 두터운 청년층을 보유하고 있다.

먼저 경험한 유럽에선
유럽도 1990년대부터 출산율 감소에 맞서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다.
<르몽드>는 지난달 21일 특집 기사 ‘출생률: 왜 프랑스는 유럽의 모델이 되었는가’를 통해 저출산 위기를 겪었던 프랑스(합계 출산율 1.79명)가 어느새 유럽의 출산율 챔피언이 됐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4%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가족 및 육아 정책에 할애해 △육아휴직 △가족수당 등의 제도를 도입하고 조기 보육 시스템 등을 완비하는 데 썼다.

또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 프랑스는 1999년 소수자 보호와 출산율 증가책으로 시민계약제도인 팍스(PACs)를 제정해 혼인 외에서 자녀를 가질 수 있다. 신문은 나아가 출산율이 높은 편인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일·가정 양립이 비교적 쉬운 국가들이었다고 짚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에도 한번 떨어진 출생률을 완전히 회복하진 못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9일 프랑스·독일·스웨덴·덴마크 등을 예로 들며 이들의 강력한 정부 지원 정책이 출생률 저하를 억제하긴 했지만 완전한 회복에 이르게 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또 저출산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존 윌모스 유엔 경제사회국 인구국장은 <뉴욕 타임스>에 “출생률 감소와 인구 감소에 대한 암울한 평가가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며 “일본은 수십년간 인구 감소와 싸워왔지만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국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지 않다. (출산율 저하는)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만큼 재앙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