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바라와 그리고 적도에 묻히다’ 우쓰미 아이코 작가
소설 ‘암바라와’ 이태복 작가… 극적 만남
(한인포스트) 역사 르뽀 ‘적도에 묻히다’ 의 일본 공동저자인 우쓰미 아이코(81세)와 소설 ‘암바라와’를 쓴 이태복 작가가 8월 14일 서울시청 앞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극적인 만남을 가졌다.
우쓰미 아이코가 지난 8월12일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제26회 만해 대상의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한국에 오면서다.
이태복 작가 역시 8월10일 오후 3시 경북 도청 동락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소설 ‘암바라와’ 출판기념회 차 고국에 왔다가 우쓰미 아이코 작가가 일본으로 출국을 하루 앞둔 8월 14일 밤 한국문협 인니지부 서미숙 전임회장의 적극적인 추진력으로 성사되었다.
우쓰미 아이코 작가는 1942년생으로 1970년대부터 1977년 인도네시아 바자란 대학에 유학하면서 일제강점말기 태평양 전쟁 때 인도네시아로 끌려 간 조선인 연합군 포로감시원 3.016명과 조선 위안부소녀 150명이 끌려가 영웅이 되기도 하고 전범재판을 받는 비극의 참상을 추적해 1980년 ‘적도에 묻히다’를 남편인 무라이와 공동 출간했다.
그리고 남편 무라이와 30년간 꾸준히 일제의 잔악상을 추적해 적도에서 조선인들의 항일운동 역사와 위안부의 참상을 조선인들 보다 더 자세히 세상에 알렸지만, 적도의 항일운동 역사영웅들의 이야기가 그 시기에 한국은 물론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조차 그 현장을 알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한인사회는 2014년 한인포스트 정선대표가 암바라와 위안부중의 한 사람이었던 경남 하동 출신의 고 정서운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암바라와 위안부 수용소를 YTN에 리포트 하면서 한인사회에 알려졌다.
* 스마랑 일본군 성노예 처소 첫 공개 / YTN 뉴스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ohA3s2zcZqM
이를 소설 암바라와 작가인 시인이자 사산자바문화연구원장인 이태복씨가 2018년 7월 대구시립중앙 도서관에서 적도의 위안부 사진전을 열면서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적도의 항일운동 조직 고려독립청년당의 현장은 사산자바문화연구원 원장인 이태복 작가가 2019년 2월 19일 삼일절을 맞이하여 한인포스트 전면에 게재함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기는 스마랑 수모워노의 고려독립청년당 혈맹지인 취사장과 스마랑 제2분견소 무기고 1945년 1월4일 손양섭 민영학 노병한 열사가 암바라와 의거를 일으키고 민영학 열사가 총탄을 맞고 쫓기다가 나무가지에 방아쇠를 걸고 총구를 가슴에 당겨 자결한 옥수수밭에서, 손양섭, 노병한 열사가 최후에 조직의 비밀을 지키려고 서로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어 방아쇠를 당기고 어깨동무 한 채 순국한 위생 창고다.
이태복 작가가 2017년부터 독립기념에 보관된 김인덕, 김도형저 1910년대 조선인의 동남아 활동역사와 살아남은 독립열사들이 올린 인터넷상의 자료, 우쓰미 아이코의 ‘적도에 묻히다’를 참고자료로 인도네시아 전 열도의 포로 감시원 배속지와 위안부 흔적을 5년 동안 탐방 취재하여 4년여 동안 25회 가까이 열정으로 쓴 소설이 암바라와다.
이태복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암바라와 역사에 관해 선배 작가이기도 한 우쓰미 아이코 작가를 꼭 만나고 싶었던 차 8월 14일 밤 출국 8시간을 앞두고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 졌다.
이 자리에는 지난해 대서사시집 ‘금강산’과 ‘동해’ 그리고 인니어 번역시집인 Pesan Sang Mentari (햇살의 말씀)을 출간한 한국대표 서정 시인인 공광규 시인과 함께 자리하였다.
공광규 시인의 합석으로 이제까지 소외됐던 동남아 적도의 항일운동과 위안부의 역사 조명이 문학인들로 인해 한층 더 확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 날 만남은 우쓰미 아이코 작가의 제자인 이영채 교수의 통역으로 이루어 졌지만, 우쓰미 아이코 작가와 이태복 작가는 인도네시아와의 오랜 인연으로 유창한 바하사 인도네시아어로 직접 소통하기도 했다.
두 작가가 연구한 암바라와의 조선인 포로감시원과 위안부들의 현장 탐방경험을 바탕으로 편안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이번 교류에서 암바라와 소설의 실제 주인공인 당수 이억관이 서대문 형무소에 근무했던 사실이 실화임을 확인했다.
소설 암바라와를 마무리 할 때까지 이억관이 서대문 형무소에 근무했던 사실을 몰랐던 이태복 작가는 픽션으로 엮어 간 것이 팩트였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주인공 이억관(소설속 김성일분)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독립운동가를 만나며 항일의 꿈을 꾼 것으로 설정한 소설이 우쓰미 아이코 작가가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쓰미 아이코 작가는 40년 전 ‘적도에 묻히다’를 기록할 당시 암바라와를 상기했고 이태복 작가가 암바라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현지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약하였다.
우쓰미 아이코 작가는 일본인으로서 한국인보다 적도에서 조선인 독립 투쟁을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있었고 일제의 잔악상을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우쓰미 아이코 작가는 ‘적도에 묻히다’를 출간한 이후 일본에서의 곤란함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일본 언론에서도 예상과 달리 호의적으로 보도해 주었기에 ‘적도에 묻히다’는 오히려 자신의 작가적 삶에 큰 보람을 느끼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전했다.
사실 암바라와 의거와 항일운동의 공적은 2004년에 공인되어 10명의 열사들에게 건국공훈 훈장이 수여됐지만 아직까지 보훈처에 기록으로만 있어 국민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
대한독립을 위해 피땀 흘려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의 정신이 창고 같은 보훈처에 기록으로만 보관되어 있고 우리국민은 물론 인도네시아 한인들조차 뿌리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오늘 광복절을 맞이하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과 영국 처칠 수상의 말을 가슴깊이 되새겨 본다. <기사제공: 한국문협 인도네시아 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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