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을 선언하였고 이틀 후인 17일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선언한다. 하지만 일본이 항복 한 후에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금 식민지화에 나선다.
네덜란드 군은 연합군과 함께 인도네시아로 들어와 민간정부를 설립하려 하는데 당시 네덜란드가 설립하려 했던 민간정부는 (NICA, Nederland Indische Civil Administration)라고 불렸다.
한편 맥도날드(MacDonald) 사령관이 이끌었던 영국군대는 1945년 10월 12일 반둥에 입성한다. 이후 영국군은 인도네시아 국군과 경찰을 제외하고는 민간인들이 소지한 모든 총을 영국군에 넘길 것을 명령했다. 이 같은 영국군의 명령은 인도네시아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1945년 11월 21일 급기야 인도네시아인들은 영국군이 머물고 있는 호만(Homann) 호텔과 프레앵글(Preanger)호텔을 공격하게 된다.
영국군이 공격을 받은 지 3일이 지난 후 맥도날드(MacDonald) 사령관은 서부 자와 주지사에게 명령을 내려 모든 반둥 시민들이 반둥시를 떠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군인들과 시민들은 이는 곧 반둥을 영국군에게 넘겨주는 꼴이라며 반둥을 떠날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영국군은 계속 반둥을 떠날 것을 명령했고 1946년 3월 23일 아하 나수티온 (A.H Nasution) 대령이 이끌던 인도네시아 군은 회의를 가지고 시민들과 군인들은 반둥을 떠나지만 영국군이 반둥을 지배할 수 없게 반둥을 불에 태워버리자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이 날 저녁 모든 시민들은 자정 반둥시를 떠나며 모든 집에 불을 붙였다. 20만 시민들이 떠난 도시에는 집들이 타면서 내뿜은 연기만이 가득했으며 멀리서도 반둥시를 가득 채운 그 연기를 선명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원래는 반둥 시 정부 공무원들은 끝까지 반둥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화재로 인한 위험성으로 인해 그들 역시 반둥을 떠났다.
또한 이 날 밤 반둥 시 남부지역에 위치한 Dayeuhkolot (다예꼴롯)지역에서 국민 투쟁 조직 (Barisan Rakyat Indonesia)의 두 조직원 무하마드 토하(Muhammad Toha)와 람단(Ramdan)은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영국군 탄약창고로 들어가 자폭하는 사건 역시 발생했다. 영국군의 전력을 약화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그 2인은 그 후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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