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3억의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 RCEP 새해 0시부터 발효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블록이 출범했다. 아세안(ASEN) 10개국과 한·중·일 3국, 호주·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 경제 협력 공동체로 한 데 묶였다.

‘알셉’으로 불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중국과 일본 등 10개국은 이달 1일부터, 한국은 국회 비준 절차가 늦어진 탓에 한 달 후인 2월 1일부터 발효된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4개국은 국내 절차가 마무리된 후 발효될 예정이다.

RCEP 발효가 우리나라 산업과 경제에 가져올 변화와 알아둬야 할 포인트를 짚어본다.
RCEP는 2012년 11월 첫 협정을 개시하고 8년만인 2020년 11월에 최종 서명했다. 협상국이었던 인도는 대중국 무역적자 확대 우려를 이유로 2019년 불참을 선언했다.

RCEP는 미국 중심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대항마 성격이 짙다.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무역 정책에 맞서 중국 주도로 RCEP가 주목받는 배경이다. GDP 규모에서 CPTPP는 미국 비중이 60%, RCEP는 중국 비중이 55%에 달한다.

RCEP는 전 세계 무역 규모의 28.7%, 전 세계 인구의 29.9%를 차지해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하다. 전 세계 인구가 10명이라면 3명이 손을 잡고 한 팀을 이룬 것이다. 기존 한-아세안 FTA를 통해 한국과 아세안 간 교역량도 크게 늘어 2020년 기준 1438억달러(약 171조)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고, 미국과 일본의 교역량을 넘어서는 규모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외교 정책인 신남방 정책은 동아시아 지역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RCEP와 일맥상통한다. 유럽연합(EU)이 유럽 국가들의 정치·경제 협력 공동체라고 한다면 RCEP는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협력 공동체라 부를 수 있다. 기존의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 보다 한층 강화된 관세 철폐 효과와 무역 확대의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RCEP 발효로 회원국들 사이에 90% 이상의 상품에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한국은 중국·일본 등과 함께 RCEP 발효로 인한 최대 수혜국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FTA를 체결한 바 있다. 다만 여러 국가와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체결하다 보니 각 국가의 복잡한 절차와 규정으로 인해 실제 FTA 활용률이 낮아지는 일명 ‘스파게티볼효과’에 봉착했다. 양자 간 FTA가 시장개방에 초점을 맞췄다면 다자 간 RCEP는 개별 상대국의 입장을 배려한 경제적 동반관계를 강조했다.

RCEP 발효는 우리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 원산지 규정이 바뀐다. 기존에는 FTA 체결국에 우리 세탁기를 수출할 때 ‘한국산’ 제품 증명을 받아야만 무관세 등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마다 원산지 결정 기준과 증명에 필요한 서류 등의 요건이 달라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됐다. RCEP는 15개 협정국을 역내국으로 묶어 역내 무역 시 ‘통합 원산지 규정’을 적용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 기업들이 부담해 온 원산지 증명이 간소화된다.

원산지 규정 절차뿐만 아니라 원산지 판정 기준도 완화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원재료를 수입해 국내 기업이 제조·가공해 다른 FTA 체결국에 수출할 때 나라별 원산지 기준에 따라 한국산 제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RCEP가 발효되면 중국산 원재료를 한국산 원재료와 같은 것으로 보는 ‘재료 누적’ 기준을 적용해 원산지 결정 기준을 판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한국산 제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품목들 상당수가 관세 인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국내 자동차·철강 등 주력 산업과 섬유·기계와 같은 중소기업 품목의 수출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부상한 의료·위생용품을 비롯해 서비스·지식재산권과 같은 무형의 콘텐츠 산업도 K팝 등 한류 열풍을 타고 상승세가 전망된다.

RCEP 발효로 교역 규모 면에서 중국이 최대 수혜국으로 등장하고 일본 역시 역내 수출 규모가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한·중·일 3국의 셈법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가운데 이번 RCEP 체결로 우리나라는 사실상 일본과 FTA 체결 효과를 누리게 됐다.

지난 2019년 7월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하며 한일 무역 분쟁을 야기시켰다. 이후 2년간 우리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육성하고 투자를 강화하는 한편 수입 다변화를 꾀해 ‘탈일본’ 성과를 이뤄냈다. RCEP 회원국에 한국과 일본이 포함되면서 이제 앞으로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와 같은 행동은 RCEP 룰을 깨트리는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 정부는 일본과 우리나라 산업의 민감성 등을 고려해 자동차·기계 품목을 비롯해 일본산 수산물 개방 등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RCEP에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미·중 무역 갈등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해 협정 체결 당시 “중국은 참여국 중 하나일 뿐 RCEP가 중국 주도의 협정은 아니다”라며 “RCEP는 아세안이 주축이 된 새로운 경제 협력공동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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