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첨예한 갈등 국면에서 인도네시아가 ‘귀한 몸’이 됐다. 전 세계 4위 인구 대국이자 동남아시아의 맹주인 인도네시아를 제 편으로 만들려는 미중 간 경쟁이 치열하다. 당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공을 들여온 중국이 한 발 앞선 형국이다.
웨이펑허(魏鳳和) 중국 국방부장(장관)이 7~10일 인도네시아를 전격 방문한다고 인도네시아 외교가의 한 소식통이 6일 전했다. 웨이 부장의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은 이 기간 예정된 일정을 모두 미뤘다. 웨이 부장이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예방할 것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그의 최종 동선은 이날까지도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와 중국은 웨이 부장의 방문 기간에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함께 미국의 인도ㆍ태평양전략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인도네시아 현지 매체는 미국 국방부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이 인도네시아 지역에 군사물류기지를 세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언론의 해명 요구에 불응했고, 외교부는 “어느 나라와도 그런 군사 협력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특히 주목되는 건 웨이 부장의 방문 시점이다. 9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외교장관 회의를 시작으로 아세안 관련 회의가 잇따라 열리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미중 간 힘겨루기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아세안 의장국인 베트남이 6월 정상회의 의장성명에 이어 이번에도 남중국해 문제를 부각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중국 입장에선 그간 역내외 현안에서 중심을 잡아온 인도네시아의 도움이 절실하다.
현재 인도네시아 내부의 기류는 중국에 우호적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밀월로 불릴 만큼 가까워졌다. 중국은 인도네시아에 첫 감염자가 발생한 3월 이후 진단키트와 방호복 등을 지원했고 최근엔 ‘백신 외교’로 굳히기에 들어갔다. 지난달 20일 외교수장 간 대면접촉을 통해 인도네시아에 백신 4,000만회분 제공을 약속했고, 같은 달 31일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조코위 대통령과 ‘백신 통화’도 했다. 웨이 부장과 프라보워 장관 간 두터운 친분도 양국 관계의 윤활유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뒤늦게 ‘러브콜’을 보낸 미국은 애가 탈 수밖에 없다. 미국은 7월부터 인도네시아에 현금을 지원하고 인공호흡기 1,000대를 순차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중국의 백신 약속보다 훨씬 실효적인 도움이지만 주목도는 덜하다. 더구나 미국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 때문에 최근엔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태다.
그렇다고 인도네시아를 ‘중국 편’으로 단정하는 건 무리다. 그간 미중 갈등이 재연될 때마다 ‘소리 없는 중립’을 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중국해 문제는 인도네시아도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다. 지난해 말 중국 순시선이 영해(나투나 제도)를 침범하자 조코위 대통령은 현장으로 달려가 “주권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발끈했고 곧바로 해상 경계를 강화했다. 당시 “침착해야 한다”던 프라보워 장관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아세안 관계자는 “미중 갈등 속에서 몸값이 치솟은 인도네시아가 실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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