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실크로드 전략과 동남아 지역의 향후 정세-이선진

(2014년 9월 2일)

특별기고

지난 7월 양곤을 거쳐 미얀마·중국(云南) 국경 지역을 여행했다. 1~2년 간격으로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를 출발해 중국 국경을 넘어 윈난성 바오산시까지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인도양에 진출하려는 중국 전략의 흐름을 파악해 왔다. 지난 4년 사이 이번이 세 번째다.

금번 여행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 미얀마의 변화, 그중에서도 미얀마를 겨냥한 일본과 중국의 경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살피려 했다. 둘째, 시진핑 시대의 세계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는 실크로드 전략의 준비 상황을 현장에서 보고 싶었다. 그중 한 가닥인 미얀마·인도 실크로드의 출발지가 중국·미얀마 국경 지역이다.

미얀마를 처음 방문한 것은 2010년 7월이다. 미얀마 군부가 현 테인 세인 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하기 직전이다. 그 후 여러 차례 양곤을 찾았고, 2012년 1월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개혁·개방 이후 양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난 방문 이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길거리에 차량이 크게 늘어 일부 구간에 정체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전기가 수시로 나가거나 인터넷 연결에 애를 먹던 과거 불편사항들이 크게 해소됐다. 양곤 시내의 길거리 표시, 시내 중심의 허름한 아파트들이 새롭게 단장됐고 매연을 내뿜으며 거리를 달리던 버스들이 사라졌다.
일본의 약진도 눈에 띈다. 길거리에 일본 자동차 일색이다. KOTRA에 의하면 미얀마에 지난 2년 동안 약 40만 대의 자동차가 늘었고 그중 90% 이상이 일본제 중고차량이라고 한다.

미얀마 정부는 오래된 자동차를 폐기하는 경우 자동차 수입권을 주었다. 여기에 부동산 값이 몇 배 뛰었으니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된 기분에서 자동차를 구입했을 것이다.

지난 방문 때만 해도 중국이 미얀마 경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서구의 경제 제재하에서 중국이 무역, 주요 프로젝트 및 광산 개발사업 등을 독점했다.

그러나 개방 이후 일본과 서구의 투자가 들어오면서 아베 총리가 미얀마를 직접 방문해 여러 정부 지원 사업(ODA)을 약속했다.

일본 기업들도 투자 의욕을 보임으로써 일본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이다. 반면 반중 감정이 표면화되면서 중국이 추진하던 일부 대형 프로젝트들은 중단된 상태다.

시진핑 시대의 중심전략으로 부상
미얀마에 있는 동안 중국의 미얀마·인도 실크로드 전략은 외교수사에 불과한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중국의 국경 도시 뢰이리(瑞麗)로 넘어가는 순간 이러한 의문은 사라졌다.

이곳에서 이미 대규모 도시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뢰이리까지 이어지는 철도공사가 진행 중이며, 항주~뢰이리 고속도로도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미 건설이 완료된 미얀마 경유 가스·원유 파이프라인도 뢰이리를 지나고 있다. 중국은 2006년 파이프라인 건설에 착수하면서 미얀마를 경유해 인도양으로 진출할 계획을 추진해 왔다.

지금도 그 전략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현재의 미얀마 정세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때’를 기다리면서 인도양 진출과 실크로드 건설을 위한 내부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실크로드 건설 전략은 시진핑 시대의 중심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해 9월 카자흐스탄 방문 시 중국 서부 내륙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 경제 벨트 건설을, 10월 인도네시아 국회연설에서는 해양 실크로드 건설을 제안했다.

중국남부 연안을 동남아, 남아시아 해양 지역과 연결하자는 구상이다. 해양 수송로 연결과 무역뿐 아니라 자국 화폐로 무역정산 결제, 스와프 등 금융과 화폐협력(currency link)까지 상정하고 있다.

이 중의 한 가닥인 미얀마·인도 실크로드는 인도양 진출 전략의 업그레이드이다.

왜 실크로드 전략인가. 중국 언론은 중국 내륙과 연안 지역 사이의 발전 격차 해소 방안이라고 설명한다(인민일보 인터넷 2014.3.11).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중국의 세계 전략이 보인다.

시진핑은 취임 후 태평양에서 미·중이 공존하는 ‘신형 대국 관계’를 추구했으나 당분간 이를 실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동아시아에서 전면적 패권경쟁에 돌입할 여건도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

결국 중앙아·동남아·남아시아로 방향을 돌려 이들 지역에서 정치·경제적 성장 동력을 만들어 세계 대국의 영향권(sphere of influence)을 확보해 가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겠다는 것이다.

동남아는 실크로드 전략의 출발점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8월 초 미얀마에서 만난 아세안 외교부 장관들에게 12개 중·아세안 협력방안을 제안했다.

중·아세안 정상회의 연례 개최, 안보협력을 위한 행동계획 작성, 2015년 최초 중·아세안 국방장관회의, 양자 FTA의 개선, 해양 실크로드 건설,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조기 발족, 2015년 중국·아세안 해양협력의 해 지정, 남중국해 문제 관련 등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아세안의 외교·안보 문제는 언급을 피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안보·경제·문화 등 전면적 협력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시진핑이 지난 5월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 안보’를 주창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아세안에 대한 구체적 안보협력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동남아, 지역협력의 제도화 급선무
동남아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의지가 강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동남아 지역의 향후 정세를 전망해보고자 한다.

첫째, 중국에 대한 일본·미국 등 강대국들의 견제가 거세질 것이다. 특히 일본 입장에서 동남아는 사활이 걸린 지역이다. 아베노믹스에서 아세안의 비중이 매우 크고, 중국 위협론을 내세우며 정치·안보 분야에서도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

일본은 우크라이나 등 다른 지역 문제에 신경 쓰고 있는 미국을 대신해 중국 견제에 앞장서고 있다.
둘째, 아세안의 역할과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냉전체제나 그 후 미국의 일극 체제하에서는 동남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평가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다르다.

미얀마 사례처럼 아세안의 태도가 일·중 대립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아세안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 2010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ASEAN Regional Forum)에서 미국과 함께 중국을 공격하던 아세안이 최근 중국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

아세안 10개국은 미국이 반대하는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창설 멤버로 참가하기로 했다. 중국의 ‘위협’을 알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동남아는 한국에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강대국의 대립이 심해지거나 중국의 ‘위협’이 증대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를 위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지역 협력의 제도화다.

동아시아에도 한때 지역 협력의 강한 열기가 있었다. 그 결과 동아시아 경제를 유럽·북미와 함께 세계 3대 경제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 열기가 중국 견제용으로 변질되면서 지역 협력마저 위태로워지고, 중국 ‘위협’ 감소에도 실패했다. 한국은 동남아와 동아시아에서 지역협력의 ‘습관’을 키워야 한다.

이와 관련, 올 12월 한국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동남아와 동아시아의 지역 협력 증진 방안을 주요 의제로 삼아야 한다.

<출처.POSRI 2014년 9월호>

글.이선진

주인도네시아 대사 및 주상하이 총영사, 본부 중국과장, 외교정책국장 및 실장, 주 미국·중국·일본 대사관을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8년 외교부 퇴직 후 중국·아세안(미얀마·라오스·베트남) 국경 등 광범위한 지역에 대해 현지 답사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의 부상과 동남아의 대응』(2011), 『대사들, 아시아 전략을 말하다』(2012·이상 편저)가 있으며, 동아시아 지역 협력 및 동남아 관련 다수의 기고 및 칼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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