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셋만 모이면 꼭 군대 이야기가 나오더라.” 아내가 씹는 비아냥에는 이와 같은 것도 있다.
그래서 바로 그 군대 이야기인데, 56년 전 빽도, 연고도 없는 이등병 허 아무개가 논산 훈련소, 김해 공병학교 교육 마치고 배속되었던 부대는 전라도 광주 부근 송정리라는 곳에 위치한 ‘전투병과교육사령부’이었다. 신출내기 소위들을 배출하는 보병, 포병, 기갑 학교 세 교육 기관이 모여 있어 사령부 규율이 엄정하고 한마디로 쫄병 신세가 고달팠다. 길게 사설을 푸는 이유인 즉 그때 뇌리에 강렬하게 새겨진 보병학교의 휘장 ‘나를 따르라’가 아직도 리더십 이야기만 나오면 떠오르기 때문이다.
굉음 속에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戰場)이나, 소리 없는 전쟁 기업경영의 현장이나, 결국 순간순간 최상의 결정을 선택해야 하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본다면, ‘나를 따르라’ 솔선수범의 리더십이 바로 리더십의 표상(表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에서 그치지 않고, 리더십에 대한 많은 연구는 기업 경영 분야에서 다각적으로 발전하였는데, ‘원칙 중심 리더십’, ‘상황대응 리더십’, ‘변혁 리더십’ 등 수 많은 이론이 창출되어 실제 경영에 적용되고 또한 실증 과정을 거쳐왔다. 어려운 말 빼고, 내 나름으로 단순화 하여 표현한다면 ‘성과 창출’과 ‘인재의 육성’ 일타 쌍피, 나아가서 ‘기업/조직문화의 혁신’까지 일타 삼피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루게 할 것인가를 학자들이나 기업경영자나 불철주야 머리 싸매고 연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근데 말이죠? 그 리더십 교육 시키면 뭘 하나요? 말짱 도루묵인걸.”
기업의 CEO 들이 대충 한탄 쪼로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이른 바 ‘반납교육’이라고 지칭한다. 집합 교육 하는 동안은 고개도 끄덕이고, 노트에 기록도 하고 새로 배운 ‘리더십’을 직장에 귀임하자 마자 적용해 볼 것 같은 결연한 폼세를 취하지만… 아뿔싸 워크숍 시간 종료 벨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말짱 반납하고 퇴실(退室)하여 ‘공자 말씀은 어쨌든 그런 말씀이고’, ‘아무렴, 사람 사는 세상에 네트워킹만큼 중요한 것이 있나?’ 아프터 한 잔 꺾기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멀쩡히 교육비 뜯긴 오너는 한탄이 나올 밖에…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깨달음과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
‘깨달음 만으로도 안된다, 습관화 하여야 한다.’
‘습관화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점검[Follow Up] 하여야 한다.’
이런 현상과 연유는 동서고금에 다름이 없는데, 한탄만 하고 앉은 우리네와는 달리 실용적인 미국 사람들이 그 실천 수단으로 개발한 것이 ‘코칭’이라는 기법이다. 코칭을 우선 리더십 명제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리더십 워크숍에서는 잘 대비(對比)되는 두 가지 형태의 리더십을 설명하기 위하여 조정(漕艇) 경기와 래프팅(Rafting) 경기를 사진을 보며 주며 예(例)로 들기도 한다.
먼저 조정경기의 그림을 보자.
잔잔한 물결 위에서 모두 힘을 합하여 다른 팀보다 빨리 목적지까지 직진(直進)하는 것이 경기의 내용이다.
강사가 묻는다. “누가 리더입니까?”, “별 싱거운 걸 다 묻네…” 하면서도 협조적인 수강생 몇몇이 도와 준다. “맨 뒤에 앉은 저 쪼그만 사람요.” 또 묻는다. “리더의 역할은요?”, “목표를 확인하고… 방향을 잡고… 팀원을 훈련, 행동 통일시켜… 나를 따르라…”
“그럼 구성원의 역할은?”, “구령에 맞추어서, 리더의 지시에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노를 젓는다…”
강사가 맞장구 친다. “그렇습니다. ‘나를 따르라’ 게임입니다.”
목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리더 혼자일 뿐, 아무도 구성원 중에 목표를 바라보는 사람이 없다. 생각해 보시라. 그들은 목표조차 바라보지 않는다. 오직 리더만을 바라볼 뿐…
호수 같이 잔잔한 환경, 변화가 아주 느리거나 거의 없는 그러한 경영환경 하에서 잘 작동해온 리더십 방식이다. 동질적(同質的) 힘을 효과적으로 모으는 ‘협동(Cooperation)’이 주로 펼쳐진다.
이번에는 두 번째 그림을 보자.
래프팅(Rafting)! 요즘은 수량 풍부한 여름 한철 우리나라 동강(東江)에서 많이들 이 경기를 한다. 인도네시아에도 이런 급류 타기 장소가 많이 있다고 들었다.
강사가 또 묻는다. “누가 리더입니까?”, “모르겠는데요…”, “뒤에 등을 돌리고 앉은 사람..”, “리더가 있기는 한가요?”… 리더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 사진만으로는 누구인지는 잘 확인되지 않는다.
“리더의 역할은요?” 이 경우엔 정리된 답이 잘 안 나온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그래서 재빨리 강사가 정리한다.
다소 의외이지만, 여기서 리더의 첫 번째 역할은 선발(選拔)이라는 것이다. 구성원의 선발. 팀원 하나하나가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팀 전체의 운명에 치명적 영향을 주게 된다. 내 학교 후배라고 해서, 또는 상사의 부탁이라고 해서 능력 없는 구성원을 선발하면 안 된다.
다음으로 리더의 역할은, 능력 있는 구성원들을 서로 조화(調和)시키는 팀워크 훈련이다. 아무리 훌륭한 멤버들을 모아 놓아도, 모두 제 각각 홍길동이 되도록 허용해서는 뗏목이 산으로 올라가는 법이니까. 팀 안에 신뢰(信賴)와 협력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리더의 역할은 믿고 맡기는 일이다. 경영용어로 ‘임파워먼트(Empowerment)’ 라고 한다. 어떤 돌발 사태가 발생할지 미리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리더가 일일이 지시 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없다. 팀원 각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믿고 맡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성원의 역할은?
각자에게 맡겨진 일의 수행, 그러니까 이 경우 위기관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매 순간 앞에 닥치는 위기를 해결하여야 한다. 노를 저어 급류를 헤치고, 때로 이를 삿대 삼아 다가드는 바위를 밀쳐 낸다.
그 뿐이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 옆의 팀원에 대하여 자발적(自發的)인 협력을 제공하는 일이다. 자기 임무 완수하고 능력 남을 때, 동료를 돕는 일도 중요한 협력이지만, 자기 임무보다 더 긴급한 (우선순위가 높은) 상황이 옆의 동료에게 닥쳐왔을 때, 이를 스스로 판단하여 제 일 젖혀 놓고 자발적 협력을 제공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임무이다.
나야 내 할 일 다 했는데 하고 책임론(責任論) 주장해 봐야 뗏목 뒤집어지고, 게임 끝나고 만 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질적(異質的) 힘을 모아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코디네이션(Coordination)’이 게임의 주제이며 이를 종용(慫慂)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늘 예측불가 하게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는 리더십, 앞의 ‘나를 따르라’와는 또 다른 리더십의 양상인 것을 보았다.
자! 여기까지 수많은 리더십 형태 중 두 가지 대비를 예로 들었다. 여러분들이 지금 처한 경영환경은 그 복잡도에 있어 어느 편에 가까운가? 여러분은 리더로서, 또는 구성원으로서 환경으로부터 오는 도전에 적절히 응전(應戰)하고 있는가?
‘내 응전은 10점 만점에 몇 점?’ 지난 회에 예로 들었던 골프 코치처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라. 아니, 그런 적절한 질문을 해줄 코치가 필요할 때마다 곁에 있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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