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와 음지

(‎2014‎년 ‎7‎월 ‎23‎일)

손은희 작가의 무지개 단상 (2);

꼭 시골 뒷간처럼 움푹 웅덩이가 패인곳에 구정물이 고여 있는 곳이 뒷간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빈민촌 사람들이 매일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는 우물이라는 말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한국대학에서 온 사회봉사단 팀에 통역원이 필요하다는 밥퍼사역팀의 연락을 받고 딸아이와 함께 사회봉사단을 따라 찾아간 극빈촌의 모습은 내 상상을 초월할만큼 처참한 상황이였다.

우리가 평소 차를 타고 무심히 지나쳐가는 고가도로 밑에 무허가로 판자촌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에 벅차기 이를 데 없는 환경을 견뎌내고 있었다.

허리를 90도로 굽혀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고 어두컴컴한 동굴같은 곳의 진흙바닥에 낡아빠진 매트리스나 박스를 깔고 주어온 너저분한 물통, 그릇, 수저 등으로 겨우 끼니를 연명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시장통이나 쓰레기장을 뒤져 먹을 것을 구한다고 한다.

한평 남짓한 곳에서 다섯식구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곳에 천막으로 누울자리를 마련하고 살고 있는 가족의 모습,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여 코를 막고 지나쳐야 하는 불결한 환경속에서 엄마품에 안겨 잠든 아기의 흙빛 얼굴 등이 잠시 봉사를 위해 찾아간 내 마음을 아프게 눌러왔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그곳에 비좁긴 하지만, 아이들이 옹기종기 무릎을 맞대고 공부할 수 있는 작은 교실이 밥퍼사역팀에 의해 지어졌고 한글과 영어 등을 가르치는 사역이 시작되고 있었다.

빈곤퇴치는 물질적인 원조만으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가난한 현실을 볼 수 있고 그것을 타개해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수 있도록 두뇌를 깨우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쟁직후 야학 등 문맹퇴치교육으로 무지한 농민들의 의식을 먼저 깨웠듯이 극빈촌의 자녀들을 먼저 교육으로 일깨우는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인도네시아가 빈부격차가 심한곳이라 말들을 많이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심한 정도가 아니라 하늘과 땅 차이이다.

한 사람이 몇십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도 또 다른 아파트를 구입하려 돌아다니는가 하면 오늘 방문한 극빈촌 마을처럼 몸하나 제대로 누일 곳이 없어 고가도로밑의 어둡고 축축한 음지에 숨통을 조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무수히 많다.

너무 환하고 찬란한 양지에서 넘쳐나고 배불러 주체할 수 없는 자가 있는가 하면 빵한조각 살 돈이 없어 퀭한 눈으로 쓰레기를 뒤지며 음지에 사는 자가 있다.

이 양지와 음지는 과연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일까?

돌아오는 길, 온갖 상념이 들지만 그 모든 이유를 알려고 하기전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게 더 현명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적 지원이든 교육이든 정신계몽이든 그 어떤 도구를 통해서든 양지에 선 자가 음지에 선 자를 그 처참한 빈곤의 동굴에서 나올 수 있게 손을 내밀어 끌어주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장 절실할 것이다.

그런 사랑이 절실해지면 우리는 어떤 대책이나 방법이든 강구하게 될것이고 그 음지를 위해 기도할것이고 찾아갈 것이며 손을 내밀어 끌테니 말이다.

이 일을 사명으로 알고 지속적으로 묵묵히 오랫동안 일해온 밥퍼사역팀 봉사자가 있음에도, 어쩌다 찾아간 손님같은 내가 이렇게 혼자 무슨 대단한 봉사자인양 떠들고 있는 모습이 심히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양지에 살면서도 감사를 잃고 불평하고, 음지에 무관심하게 살아왔던 내 모습이 오늘은 참 많이도 부끄럽고 부끄러워 반성문처럼 글을 써본다.

음지에서 찢어지는 가난때문에 속울음을 오랫동안 삼키며 견뎌온 자들이 밝은 양지에서 환하게 웃게 될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가난한 자를 보살펴 주는 자는 복이 있으니 환난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구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그의 생명을 지키시며 그를 이 땅에서 축복하시고 원수들의 손에 그를 맡겨 두시지 않을 것이다”

(시 41:1-2)
손은희 작가(하나님의 퍼즐조각 저자, 자카르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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