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 진료, 인도네시아에도 뒤진 한국

자카르타선 새벽에도 환자가 집에서 진료와 藥 처방 받아 한국은 드론 등 新산업 분야, 규제에 꽁꽁 묶여 계속 落後

최우석 조선일보 미래기획부 부장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아픈 사람이 새벽 2시 반에 집에서 진료를 받고 약 처방을 받을 수 있다. 휴대폰에 깔려 있는 ‘고메드(Go-Med)’라는 앱(어플리케이션)에 접속하면 의사가 원격(遠隔) 진료를 해주고 처방전까지 내주는 덕분이다. ‘고메드’는 그 새벽 시간 약국에서 처방된 약을 받아 아픈 사람 집까지 배달하는 서비스도 한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측근인 카리나씨는 “몇 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자랑했다.

한국에서 원격 진료는 불법이다. 새벽 진료는 응급실 아니면 못 한다. 새벽에 문을 연 약국 찾기도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심야나 새벽에 아프다는 환자의 응급 전화를 받는 의사는 편법을 동원해야 한다. 환자와 가족이 대화하는 장면을 화상 전화로 연결해 지켜본 후 어떻게 하라고 간접 진료하는 식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메드’ 방식의 환자 진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인인증서 본인 확인을 시작으로 건강보험공단과의 연동, 의사회•약사회로부터 ‘승인’ 등…. 거쳐야 할 까다로운 절차가 즐비한 탓이다.
‘고메드’는 차량 공유 앱인 인도네시아의 ‘고젝(Gojek)’이 미국 회사 우버를 현지화하면서 차량과 쇼핑, 영화 예매, 장보기, 세탁 같은 서비스로 확장하면서 생겼다. 공급자(의사•약사)가 아닌 소비자(아픈 사람) 입장에서 보면, 1인당 국민소득 3800달러(2017년 세계은행 조사)인 인도네시아가 한국보다 ‘선진국’인 셈이다.

드론 산업도 한국보다 인도네시아의 진행 속도가 더 빠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주요 섬에 드론 비행장을 지어 거점 드론 비행장과 수백 개의 섬을 물류 네트워크로 연결한다는 정책을 최근 내놓았다. 세계 4위의 인구 대국(2억6000만명)인 인도네시아는 1만7000여개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922개 섬에 사람이 산다. 나라 전체가 섬으로 구성돼 있다 보니 도로 등 물류 시스템 구축이 큰 골칫거리인데, 이 922개 섬에 거미줄 같은 드론 운항 노선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톰 렘봉 인도네시아 투자조정청장은 “드론 수십만 대가 자동 원격 소프트웨어로 통제되는 시스템을 한국 기업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외딴 섬에 사는 환자들의 혈액을 수거해 드론에 실어 거점 지역 병원으로 가져온 후 검사 결과를 화상(畵像)으로 원격 진료한다면 진정한 선진 의료 복지를 국민에게 제공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드론 산업은 어떤가. 쉽게 말해 능력은 되지만 규제에 발이 꽁꽁 묶여 있는 상태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시 1218대의 드론이 군무(群舞)를 펼쳐 세계적 찬사를 받았다. 사상 최대 숫자의 드론이 올림픽 오륜기와 마스코트 ‘수호랑’ 등을 하늘에 수놓아 화제를 모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전(事前)에 녹화해야 했다. 대통령 앞에서 드론을 띄울 수 없다는 경호법상의 규정 때문이었다.

신기술•신산업에 대한 규제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전동 킥보드나 전기 자전거는 인도(人道)나 공원에 들어갈 수 없다. 자동차를 대신하는 친환경 도구로 환영받을 법한데, 보행자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막고 있어서다. ‘보행자 주변에서는 서행(徐行)한다’는 규칙만 넣으면 될 텐데 무조건 금지이다.

기술력을 갖춘 우리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나가려면 먼저 국내에서 실력과 자신감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정작 정부가 국내시장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으니…. 이러다가 우리보다 몇 수(手) 아래로 여겨오던 나라에 추월당해 이들에게 배워야 할 시대가 곧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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