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흐름 따라 ‘롤러코스터’ 타는 외환시장

신흥국 통화가치 폭락 릴레이에 미 금리 인상 우려 위안화 환율에 시장 상황 반영… 달러 하락 반전세

원/달러 환율이 하반기 초입부터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 달러당 25원의 폭등세를 보인 이래 움직임이 과격해진 모양새다. 우리 외환 시장이 대외에 완전히 개방돼있는 만큼 이는 세계 경제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원/달러가 6월 들어 급등한 것은 미 연준이 연내 금리 인상 계획을 3회에서 4회로 상향 조정한 데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무역확장법 301조 관세 조치가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7월에는 미 경제 호황과 더불어 신흥시장에서 외화 유출 추세가 가시화됐다. 강달러 기조가 더욱 세졌고, 환율은 달러 당 1135원 선을 돌파했다. 이는 7월 말 미국과 EU가 무역 전쟁에 관해 유화적인 신호를 보내며 다시 1120원 선 밑으로 하락했다.

8월 중순에는 거대 경제 미국의 발구르기에 신흥국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세계 금융시장을 휩쓸며 또 환율이 1130원 선 위로 폭등했다. 8월 10일부터 13일까지 터키 리라화가 미국과의 갈등으로 20%가량 폭락하자 외환위기 공포는 다른 신흥국 금융시장으로 빠르게 퍼졌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리라화 폭락 사태 이후 일주일 동안 아르헨티나 페소(-5.40%),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6.98%), 멕시코 페소(-1.53%), 브라질 헤알(-2.66%), 인도 루피(-2.10%), 콜롬비아 페소(-3.61%) 등 취약 신흥국 화폐 가치가 동반 하락했다.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외화 부채의 상환 여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 때문에 자국 시장에서 투자 자금이 계속 이탈에 통화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올해 들어 터키뿐만 아니라 다른 신흥국에서도 이처럼 경제 불안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일부 산유국들은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이미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외화 공급이 차단돼 자국 통화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면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지난달에만 물가상승률이 8만%를 넘었고 올해 전체 물가상승률은 100만%에 달할 것이 예상된다.

이란도 미국이 핵협정 탈퇴 이후 리얄화 가치가 70% 이상 급락했고 올해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다임러, 토탈, 푸조 등 이란에 진출했던 외국 기업들의 ‘엑소더스’도 가속화되고 있다. 11월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가 단행되면 이러한 경제 불안은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신흥국 위기,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전이될까
리라화 폭락 사태가 다소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며, 8월 하순 들어 원/달러 환율은 다시 달러 당 1120원 선 밑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 신흥국 경제 불안을 자극할 만한 요인들은 산적해 있다. 리라화 사태의 근본적 원인인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도 여전히 터키에 억류된 채다.

그간 신흥국들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일어날 경우,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기구 대신 중국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의 역할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일본 <닛케이>는 최근 보도를 통해 “중국에 의존하는 취약 신흥국의 경제 구조는 부채를 더욱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며 “중국 국영기업에 항구를 인도한 스리랑카 사태의 유사 사례가 다른 나라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 중국 경제가 다른 신흥국들을 든든하게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인 상황도 아니다.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에 대한 위협도 고조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대중국 무역 비중이 높은 말레이시아(29%), 태국(19%), 한국(18%), 칠레(13%), 남아프리카공화국(11%) 등의 경제도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신흥시장의 불안은 올해 들어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 긴축에 속도를 내면서 시작됐다. 금융위기 이후 빠르게 부채를 늘려온 신흥국 경제가 미국의 금리 인상기를 맞아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MSCI 신흥시장지수는 1월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흥국 금융시장은 리라화 사태와 같은 외부 충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또 미 연준이 9월과 12월 잇따라 금리를 올릴 것이 예상되면서 신흥시장에서의 자금 이탈이 가속화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일부 신흥국들의 경제 상황이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한 상황이어서 언제든 위험이 여러 나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무역 전쟁’ 양상에 좌지우지되는 환율
8월 23일 미국이 160억 달러의 대중국 추가관세를 부과하고, 9월 6일 이후 2000억 달러의 관세 폭탄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8월 말 원/달러 환율은 1110원 선 밑으로 내려왔다. 북미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이 무난히 타결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무역 전쟁 우려가 감소했고, 중국도 미국의 무역 관련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식재산권 보호를 더욱 강화하고 침해 사범을 중범죄로 처벌하는 한편 외국 기업들에 대한 강제적인 기술 이전 요구를 단속할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중국이 외국계 기업에 기술 이전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미국의 주장에 중국이 대응한 바라는 분석이다.

일본 <지지통신>에 따르면 최근 리커창 총리는 프랜시스 게리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사무총장과 베이징에서 가진 회담에서 “중국은 국내 기업이든 외국 기업이든 똑같이 보호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강제 기술 이전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적발될 경우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인민은행이 위안화 가치의 급격한 절하를 막기 위해 기준환율 산정에 ‘경기대응요소(counter-cyclical factor)’를 재도입한 것이었다. 중국이 지난해 5월 26일 이 조치를 최초로 도입했을 때, 위안화 가치는 6.7% 절상됐다.

인민은행 산하 국제금융연구소 왕유신 연구원은 “이번 조치는 인민은행이 금융시장 쏠림 현상을 막으려는 주동성과 예측성을 보여줬고, 국제적 리스크에 대한 파장과 충격을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왕 연구원은 또 “이번 조치는 환율 안정을 추구하는 인민은행의 자신감과 결의를 보여줬다”면서 “만약 상황이 계속 악화한다면 다른 수단을 쓸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는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무역 협상을 타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정부가 수출기업을 지원하고 미국의 관세 부과 충격을 완화하려고 일부러 위안화 가치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박상현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인민은행의 이번 조치에 대해 “달러화 강세에도 경기 대응 차원에서 위안화를 절상시킬 수 있다는 뜻”이라며 “좀 더 확대해석한다면 미국 측의 관세 보복 대응 차원에서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더 이상 약세로 유도하는 정책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또 “인민은행의 조치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미-중 무역 협상 타결을 위한 선제적 조치로 위안화의 절상을 유도하는 것”이라며 “미-중 무역 협상이 당분간 공전하겠지만, 중국 측의 입장 변화는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미-중 무역 협상 진전을 위해서 대미국 무역 흑자 규모 축소, 위안화 환율 조정, 불공정 무역 관행 시정 등 중국 시장 개방 등에서 양보의 폭과 속도를 높이면서 오는 11월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까지 의미 있는 무역갈등 해소를 도출하는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사.주간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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