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내 친구가 되어 사진을 찍어줘
지난 11월 8일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 뜻있는 날이었다. 그 날은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국빈방문 첫날이며 동포간담회를 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동포간담회에는 400여 명 참석했었는데 인도네시아인은 50명 밖에 없었다. 저는 그 50명 중의 하나다.
외부인으로서 참석했지만 오히려 한국인보다 따뜻한 마음을 얻을 지도 모른다. 24번 테이블에서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코이카 대표님과 함께 자리를 받아 양국간의 친밀한 관계를 처음부터 느껴준다. 특히 이번 간담회에는 대통령의 뜻대로 처음으로 내국인(한국인)뿐만 이닌 현지인까지 초대해 주신다는 것이 더욱 더 감동적이었다.
재미 있는 것이 대통령을 포함하며 다른 주인공이 외교부 장관님이었다. 저희 테이블 바로 앞에 앉아계셔서 줄을 서 있는 한국인들이 잘 보이게 되었다. 인사 물론 셀피까지 해 보고 싶은 한국인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반응을 해 주시고 싫증 난 표정이 전혀 없었다. 저희도 결국 사진 부탁했었다.
놀랍게도 한국인이 아니도라도 따뜻하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한국 위인분들은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님처럼 이렇게 착하신가? 굉장한 일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통령이 입장하실 때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르며 응원하고 큰 박수를 보냈다. 정말로 멋진 분이라 생각이 든다. 미소를 지으면서 모두에게 인사를 주셨다.
그 날밤은 거리가 없는 밤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통령님이 한국동포와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아름다웠다. 저는 5년 반 한국에 유학하면서 한국생활을 하다 보니 한국이라는 나라가 외국말고 제2의 고향으로 보고 있다.
2012년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가끔 한국을 다녀왔지만 그 날밤에 비로소 한국은 거리가 없는 나라로 느꼈다. 바로 여기 제 앞에 많은 한국인이 제 나라에서 머무르고 한국과 인도네시아 사이 좋게 진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제일 기억이 남는 것이 바로 <사진촬영>이었다. 설마? 의심을 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400명과 일일이 사진 찍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깊은 추억일 것이다. 순서가 되어 우리는 테이블 무대로 올라 가까이 대통령을 볼 수 있었다. 두근두근 거리면서 악수를 받았다. 단체사진 끝난 뒤에 제 친구가 셀피하자고 했는데 받아주셨다. “와~대박” 저는 너무 떨려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저는 “친구”라고 말씀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상한 소리만 해버렸다. 다행히 대통령은 내 친구가 되어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 소감문으로 인사를 제대로 하고 싶다. 저는 에바라고 하며 경희대를 졸업했다. 저에게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2의 고향인 한국 대통령이며 제 선배로 자랑하고 싶다. 덕분에 그날 밤 즐거웠고 고마웠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성공하기를 기원하겠다. 특히 이번 국빈방문을 통한 양국간의 교류 관계가 더욱 더 성공적으로 기대된다.
겨울이 길고 깊었으니 곧 봄이 올 것
“당신들이 청을 섬기든 명을 섬기든, 그것이 나한테 중요한 것이 아니오, 단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더 큰 의미가 있지…”
최근 본 영화 ‘남한산성’에서 나오는 대장장이 서날쇠의 대사이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정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일이다. 나 역시, 고국의 정치흐름이나 동향에까지 관심을 쏟을만큼의 여력이 없었다. 해외에서의 오랜 삶이 그것을 더 부추겼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고 적폐청산 vs 정치보복으로 고국은 여전히 시끄럽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은 명분과 대의를 내세우며 자기들 이익챙기기에만 급급하고 뉴스를 보다가 TV를 꺼버리는 일이 다반사…
그런 와중에 초대된 자리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것이 근사했고 따뜻했다.
저녁 8:30분에 올라갈 무대를 위해 1:30부터 모였다. 시원타 못해 추운 실내 덕분에 마음과 몸까지 모두 긴장상태…리허설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것 같은 탓에 긴장은 배가 되었다.
그리고 올라선 무대. 400여명의 내빈과 대통령 내외분 앞에서 우리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힘을 내거라 강으로 가야지
힘을 내거라 바다로 가야지
흐린 물줄기 이따금 만나거든
피하지 말고 뒤엉켜 가거라”
준비한 두 곡이 끝나자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보내주는 듯한 따뜻한 박수 소리가 무척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퇴장을 하려는 찰나, 대통령 내외분이 무대를 향해 걸어 나오셨다.
시나리오에 없던 갑작스런 상황에 모두 놀랐다.
어린이들, 단원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모두 일일이 악수하시고 감사를 표해 주셨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개인적으로 내게도 잊지 못할 순간이다.
그 날 이후, 주변에서 많은 인사를 받았다.
지휘자로서 대표로 내가 인사를 받을 뿐, 그날의 모든 영광은 아버지 앙상블, 아르떼여성합창단, 자카르타 어린이합창단, 우리 모든 단원들의 수고와 노력에 돌린다. 대통령께서 악수하며 뭐라고 하셨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실 뭐라 특별히 하신 말씀은 없다. 다만 꼭 잡은 두 손이, 마치 영화 속 대사처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겨울이 길고 깊었으니 곧 봄이 올 것이다”
귀한 자리, 소중한 추억에 다시 한번 감사하고, 우리가 부른 노래 가사처럼 아름답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꼭 만들어 주시길 바래본다.
같은 ‘동포’ 같은 ‘자리’ 앉았다 것, 더 큰 의미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은 보통 2년, 길면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맡은 임무를 수행한 후 귀국한다.
단원활동 종료 후 취업 등의 이유로 현지에 정착하지 않는 이상 단원이라는 존재는 잠깐 왔다가는 이방인일 뿐이기에 그 동안 타국 인도네시아에서 터전을 일궈온 어르신들, 이제 막 터전을 마련하려는 젊은이들 그리고 뜻을 가지고 인도네시아로 날아온 유학생들과 같은 ‘동포’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가? 라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님의 인도네시아 국빈방문으로 마련된 동포간담회에 초청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님과 같은 자리에 앉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게 되었다. 동포간담회 후 지인들에게서 “대통령 옆에 앉은 기분이 어땠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물어볼 것도 없이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역사적 사건이었고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큰 영광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먼 타국 인도네시아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활동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같은 일원으로서, 같은 ‘동포’라는 묶음으로 같은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 내게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이런 자리에 참석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코이카 사무소와 대사관에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날
2018년 11월 8일, 아마 이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잊지못할 날이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외분의 동남아시아 순방의 첫 일정인 동포간담회에 참가하여 문대통령님과 김정숙 여사님을 지척에서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이미 행사장은 대통령님 내외를 뵙는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간담회 초청자들의 다양한 배경을 보면서, 청와대와 대사관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재계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청년대표, 태권도선수, 구호 활동가 및 시민사회단체도 참석해서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 있을때도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못느끼는 경우가 많다.
내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이역만리 적도의 나라에서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대통령님을 직접 뵈니, 감회가 새로웠다. 간담회를 통해서 대통령님께 나라를위해 수고 많으시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대통령님과 김정숙 여사님의 따뜻한 한마디 한마디에 오히려 내가 격려와 위로를 받은 자리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간혹 스스로가 한국인임을 잊고 살 때가 있는 것 같다.
물론 현지인들과의 원만한 소통과 관계확립을 위한 현지화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마음속에 갖고 살아가는 것도 중요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사준비에 수고하신 대사관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문대통령님 재임기간 중 다시한번 인도네시아에서 뵐 수 있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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