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5일 전부터 우편 발송…”부정투표 우려보다 참정권 보장 우선”
프랑스, 전자투표도 병행…에스토니아는 유권자 51%가 전자투표 선택
해외에 사는 200만 한국인 유권자의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우편투표나 전자투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아지고 있다.
재외동포청 주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원으로 최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재외선거 제도개선 토론회’에서는 주요 선진국의 우편투표·전자투표 운영 사례가 집중 조명됐다.
발표자들은 미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스웨덴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5개국이 이미 우편투표 등 다양한 투표 방식을 통해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적극 보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군인과 국외 거주 미국인의 선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초당적으로 법을 개정했고, 2009년 국방수권법(NDAA)의 하위 법안인 ‘군인 및 재외국민 투표권 강화법’이 제정돼 2010년 선거부터 본격 적용됐다.
연방선거일 45일 전에 투표용지를 발송하고, 투표지를 받지 못한 경우를 대비해 연방 공용 부재자투표 용지를 전자 방식으로도 제공하고 있다. 투표용지 제출은 주별로 우편, 팩스, 이메일 스캔 등 다양한 방식이 허용된다.
2020년 선거에서 전체 재외유권자 약 283만 명의 12%인 34만 명이 등록했고, 이 중 67%인 23만 명이 실제로 투표에 참여했다. 등록자 기준 투표 참여율은 높은 편이다.
◇ 우편투표 도입국 “부정투표 가능성 있으나 심각한 수준 아냐”
부정투표 문제에 대해서는 “가능성은 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는 것이 미국 정부감사원(GAO)의 2019년 평가다. 유 교수는 “미국은 여러 현실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재외국민의 투표권 보장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는 1946년 우편투표를 도입했다가 선거부정 논란으로 1975년 폐지했지만, 현재는 대통령·국민투표·하원의회·유럽의회 선거에서 우편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2012년부터 전 세계를 11개 재외선거구로 나눠 운영하고 있으며, 대리투표와 전자투표도 병행한다. 재외선거에서는 대리투표와 전자투표도 함께 허용해 우편투표 활용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프랑스의 우편투표는 유권자가 지지 후보의 투표용지를 선택해 투표봉투에 넣은 뒤, 이를 신분확인용 식별봉투에 밀봉하고 서명한다. 여기에 서명된 신분증 사본을 함께 회송봉투에 넣어 우편 발송하는 방식이다. 회송 비용은 유권자 부담이다.
독일은 1957년 우편투표를 도입했다. 초기에는 특정 사유가 있을 때만 허용됐으나 2008년부터 아무 이유 없이도 선택할 수 있게 됐으며, 현재 전체 투표의 절반가량이 우편투표 방식으로 이뤄진다.
재외국민의 경우 공관투표는 없고 우편투표만 가능하다. 관할 지자체에 유권자명부 등록 신청서를 제출하면 투표카드와 우편투표 용지를 함께 받고, 해외 공관을 통한 배송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역시 비용은 유권자 부담이다.
오스트리아는 오랜 법적·정치적 논란 끝에 2008년 헌법재판소 판결로 우편투표를 도입했다. 재외선거는 공관투표 없이 우편투표로만 진행된다. 한 번 등록하면 10년간 유효하고, 투표용지 신청은 선거공고일부터 선거일 4일 전까지 할 수 있다.
투표용지 수령 즉시 기표할 수 있으며, 공공우편을 이용할 경우 발송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대리투표 방지를 위해 자필로 서명한 서약서 동봉이 의무화돼 있다.
스웨덴은 1968년부터 해외거주 시민권자의 재외국민투표를 실시해왔다. 2002년부터는 우편투표를 의회선거, 지방선거, 국민투표 전반으로 확대했으며, 재외국민에게는 공관투표·우편투표·대리투표 세 가지 방식 모두를 허용한다.

- 중국 베이징 주중대사관에 마련된 제21대 대통령 재외선거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한인들이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전자투표 에스토니아 첫 도입국, 프랑스는 재외국민 맞춤형으로
전자투표의 경우 세계 최초로 이를 전면적으로 도입한 에스토니아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문은영 전 건국대 시민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재외선거에서의 전자투표 도입에 관한 논의-에스토니아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에스토니아가 2005년 전국 선거에서 인터넷 기반 전자투표(i-voting)를 처음 도입한 이래 의회선거, 지방선거, 유럽 의회선거 등 지금까지 14번의 선거를 중단 없이 실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도입 초기 1.9%에 불과했던 전자투표 비율은 2023년 의회선거에서 51.1%로 올라 절반 이상의 유권자가 선택하는 일상적 투표 방식으로 정착했다.
에스토니아의 전자투표는 정부가 발급하는 ID카드에 내장된 공개키(Public Key) 인증 시스템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2007년부터는 모바일 ID로도 본인 인증과 투표가 가능하다.
선거기간 투표 선택을 바꿀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한 투표만 유효하고, 전자투표 후 투표소에서 종이투표를 하면 종이투표가 우선한다.
시스템 구조는 전통적인 우편투표의 ‘이중봉투 방식’을 전자적으로 구현한 형태다. 유권자 투표 결과는 암호화돼 저장되고, 개표 시 유권자의 디지털 서명(개인정보)이 제거된 뒤 익명의 투표 결과만 집계된다.
도입 당시 대통령이 법안 공포를 거부하고 대법원에 제소하는 등 논란이 없지 않았다. 에스토니아 대법원은 투표를 무제한 변경할 수 있는 기능이 ‘가상의 기표소’ 역할을 한다고 보아 비밀선거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2017년 80만 명의 ID카드 보안 취약성이 발견되는 위기 상황에서도 에스토니아 정부는 카드 교체 대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문제를 해결하며 신뢰를 지켜냈다.
문 전 교수는 “에스토니아가 전자투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은 기술 발전만이 아니라 시스템·정부·사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며 “소스 코드 공개, 시범 투표 참여 기회 제공, 24시간 기술지원 등 투명한 운영이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의 경우 재외국민의 저조한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재외선거에 한해 온라인 투표를 과감하게 도입한 상황이다.
2012년 총선에서 처음 실시했는데 당시 재외 유권자의 55%가 현장 공관 투표 대신 온라인 투표를 선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투표 방식은 해외 영사관 선거인 명부에 등록된 재외 유권자에게 이메일로 개인 식별 번호를 발송하고 휴대전화 문자로 인증 번호를 따로 발송해 양쪽으로 받은 정보를 조합해야 인터넷 투표 웹사이트에 로그인 할 수 있도록 했다. 선거 기간에는 세계 어디서든 웹 브라우저를 통해 투표를 마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인천국제공항 국제우편물류센터에서 중앙선관위, 외교부, 우정사업본부 관계자 등이 외교행낭을 통해 국내로 회송된 재외투표지를 확인 및 분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한국도 우편·전자투표 도입 검토해야”
유 교수는 OECD 5개국 사례를 종합하면서 “이들 국가는 국가별 차이는 있지만 신청 단계에서 자격 여부를 검증하고, 우편투표 전달과 회송 과정에서도 재외국민의 참정권 보장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또 “부정투표 가능성은 인지하고 있으나 유권자 자필서명과 참관인 제도 등으로 상쇄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우편·공관·전자투표 등 다양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적극적으로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우리의 경우 등록 절차의 편의성은 높아졌지만, 공관투표만을 허용함으로써 실질적인 참정권 보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적어도 대선과 총선에서는 우편투표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우편투표제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늦은 후보 결정, 짧은 선거운동 기간 등 한국의 정치 환경을 감안한 공직선거법 개정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외 사례들은 공통으로 ‘편의성’과 ‘보안성’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이 우편 시스템의 신뢰도와 서명 대조를 통해 오프라인 보안을 강화했다면, 에스토니아와 프랑스는 디지털 인증을 통해 온라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해외 사례를 참고해 재외국민의 실질적인 선거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논의가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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