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C 조선소와 주변 건물들

[그림 출처-Youtube.com/Dutch Docu Channel]

한인회 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11번째 칼럼

한인니문화연구원 부원장 정윤희

VOC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순다끌라빠 조선소

[17세기 VOC 조선소 – 18세기의 여러 개의 그림들을 붙인 것 / 그림 출처-researchgate] 그림 중앙부분을(깃대의 왼쪽) 복원하여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17세기 VOC 조선소 – 18세기의 여러 개의 그림들을 붙인 것 / 그림 출처-researchgate]
그림 중앙부분을(깃대의 왼쪽) 복원하여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는 배들의 운항조절과 항구수리 및 정비를 위한 조선소를 순다끌라빠 찔리웅강(Ciliwung) 입구에 세웠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까지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항구였던 순다끌라빠 항구는 아시아 국가들 간의 교류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를 오고 가는 배들로 매우 붐볐다.

1725년 한해동안 네덜란드와 바타비아의 순다끌라빠 항구 사이를 정기적 오간 배들은 161척으로 기록되었고 그중 52척이 아시아 국가들의 항구를 오갔다. 조선소의 정비기술은 우수했다. 1602년과 1795년 사이에 동인도회사(VOC) 에서 정비를 받은 1700척의 선박 중 오직 246척의 선박만이 재난이나 전쟁으로 손실되었다는 것으로 VOC가 얼마나 배들의 상태를 잘 유지했는지 알 수 있다.

바타비아 순다끌라빠 항구에서는 정향, 육두구, 육두구화, 계피와 같은 고급 향신료들이 주로 선적되었고 후추와 설탕도 선적되었다. 자바커피 수출 또한 네덜란드의 독점무역에 포함되었다. 남아시아 동북부 지방의 벵갈(Bengal)지역의 초석과 아편, 중국의 캔톤(Canton)지역의 차, 일본산 구리와 특히 동인도회사 소유의 인도산 섬유들이 이곳에서 집산되었다. 17세기 당시 아시아 국가 간 무역은 유럽무역보다 네 배의 가치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18세기에 들어와 유럽 무역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다.

1699년 살락(salak) 화산이 폭발한 후에 깔리 버사르(Kali Besar) 지역의 수심이 더욱 얕아져 순다끌라빠 조선소는 작은 배들의 수리를 위해 쓰였고 더 큰 선박들은 바다가 육지 속으로 파고 들어와 큰 파도가 없는 만이 있는 뿔라우 까빨(Pulau Kapal) 또는 온러스트(Onrust)에서 점검받았다.

VOC는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항구였으니 무역을 위한 커다란 창고들이 많았다. 그림의 깃대 우측 창고에는 밧줄과 피치, 타르를 보관하던 창고들이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1980-1981년에 깔리빠낀(Kali Pakin)도로를 만들때 파손되었다.

VOC 조선소는 두 개의 부두로 구성되어 있었다. VOC 조선소의 북부는 티머워프(Timmer werf) 또는 조선업자 부두 (Shipbuilders Wharf)라고 불리며 작은 배와 보트를 수리하는 데만 사용되었다. 남쪽 부분은 안케티머워프(Ankertimmerwerf) 또는 닻 조선소 부두(Anchor Shipbuilders Wharf)로 알려지며 닻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고 후에 중국 고물과 대장장이들의 집결 장소가 되었다.

VOC 조선소는 훌륭한 선박관리 기술과 믾은 해양무역선들이 드나들던 최고의 항구였지만 이곳에서 일하던 많은 수의 숙련된 목수와 비고용 노동자 그리고 수 백 명의 노예들은 형편없는 위생상태와 말라리아로 인해 1730년대부터 빠르게 죽어나갔다. 정부가 조선소를 폐쇄하고 중국인 목수에게 임대 해 주었을 때인 1809년까지 사상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VOC조선소가 창고로 팔리기를 반복하던 중 역사적 가치를 알아본 한 여성이 마침내 창고를 구매했고 이 낡은 건물은 복원되어 레스토랑과 갤러리로 사용되었다.

동인도 회사의 행정 및 기술 사무소들의 집결지

[현재 사용되고 있는 벽면에 VOC로고가 새겨진 옛 VOC 조선소] [사진출처-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
[현재 사용되고 있는 벽면에 VOC로고가 새겨진 옛 VOC 조선소]
[사진출처-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
VOC 조선소의 건물들에는 당시 동인도회사 운영에 있어서의 가장 핵심적인 행정 및 기술사무소들이 집결해 있었다. 1746년 순다끌라빠 항구 조선소에 자카르타 최초 우체국이 개관하였고 해양 지도제작자, 조선공, 밧줄 제작자, 금속세공사(대장장이)와 다른 기술자들의 작업장이 만들어졌다.

이 전문가들이 배의 품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므로 동인도회사에게(VOC)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지도 제작 역시 동인도회사에게 중요한 부분 이였으며 이 조선소는 지도제작 활동의 중심지였다. 지도 제작 수장의 감독 하에 제작자들은 새롭게 발견된 곳을 아시아 국가용과, 네덜란드 본사용으로 나누어 추가하며 만들었다. 이런 지도들은 사업기밀로 취급되었다.

‘아주 오래된 카페’ Very Old Cafe (VOC)

[사진출처-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
[사진출처-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
VOC-4VOC 조선소가 있었던 일부 건물은 19세기 초 여러 개의 레스토랑과 갤러리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 기름과 화학물질 비품창고로 쓰이던 창고건물은 새로운 주인이 개조하여 1999년부터 독특한 분위기를 주는 ‘아주 오래된 카페’ -Very Old Cafe(VOC)로 사용하였다. 목재 기틀을 부분적으로 사용한 것은 유럽스타일의 건축물에서는 보기 힘든 것인데, 이 건물의 초기 운영자가 유럽과 중국의 문화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인 바타비아에 거주했던 후손, 브따위(Betawi)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제공되는 음식도 유럽, 중국, 브따위의 다양한 음식이 유명했다. 특히 세가지 맛의 구운오리요리, 오리껍질빵, 소꼬리요리, 사바나치킨(Ayam Sabana), 우중꿀롱(Ujung Kulon) 지역의 음식등 독특한 이름의 요리가 알려져있다. 한때 유명세를 탔던 VOC 레스토랑은 2020년 3월 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방문 시 이미 문을 닫았었고 레스토랑 옆 칸은 화교 음악학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길게 이어진 건물 한켠의 라자(Raja) 레스토랑은 여전히 활발히 이용되고 있는지 결혼식 단체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했다.

조선소 건물 중 일부가 현재에도 수십 년 방치된 채로 있거나 일부분은 복원하여 사용되고 있다. [사진출처-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
조선소 건물 중 일부가 현재에도 수십 년 방치된 채로 있거나 일부분은 복원하여 사용되고 있다.
[사진출처-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
옛 조선소 뒤편에 위치한 운하자리에 1996년 빤뚜라(Pantura) 기념비가 세워졌다. ‘빤뚜라’는 빤따이(Pantai: 바다), 우따라(Utara: 북쪽)를 뜻하며 이 기념비는 간척사업과 북부 해안 재건사업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이 야심찬 사업은 1998년 금융위기로 인해 실행되지 못했다.

안케워프(Ankerwerf) 닻 제작소

[사진출처-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
[사진출처-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
VOC조선소의 닻 제작소 안케워프 건물은 현재 자카르타에서 가장 오래된 VOC의 창고 중 하나이지만 정부와 소유권자의 무관심으로 방치되었다. 그 결과 2018년 6월 1일, 17세기에 지어진 역사적 건물이 고작 5분만에 무너졌다고 건설현장 노동자인 끄리스와(Kris) 나따가(Nata) 목격담을 진술했다.

1834년 선박 수리 장소로서의 기능을 이미 상실한 안케워프는 1920년 부두 깔리 버사르(Kali Besar) 찔리웅(Ciliwung) 강이 폐쇄되며 그루트 붐(Groote Boom) 수출입항 세관본청 장소 및 금속세공, 중국폐품, 화학 물질 보관소외 창고로 다양하게 쓰였다. 1990년대에 안케워프는 현재 소유주인 PT Karya Tehnik Utama에 의해 부분적으로 복원되었으나 역사적인 차원의 보존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VOC창고 건물이 부분마다 소유주가 다르기 때문에 완벽한 수리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루트 붐(Groote Boom) 수출입항 세관본청

[그루트 붐’(Groote Boom) 수출입항 세관본청은-자료출처 picryl.com]
[그루트 붐’(Groote Boom) 수출입항 세관본청은-자료출처 picryl.com]
1834년 바타비아 순다끌라빠 항구 입구 옆에 ‘그루트 붐’(Groote Boom)’이라고 불리는 수출입항 세관본청 사무실이 지어졌고 1877년 탄중 프리옥(Tanjung Priok) 새로운 항구로 옮기기 전까지 항구 총관리 소장 사무실이 그루트 붐 건물 내부에 있었다. 1900년대 우편엽서에 등장 하기도한 그루트 붐 수출입항 세관본청은 1996년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부득이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VOC조선소외 행정 및 기술 사무소들의 집결지인 인도네시아의 17세기 유산 건물 보존은 실망스러운 역사가 될 것이고 상업적 이익에만 초점을 맞춘 복원은 앞으로 역사적 가치를 가진 보살핌을 받을수 있을지 의문이다.
*감수:최수진
*참고문헌 및 번역
-『Historical Sites of Jakarta』 by Adolf Heuken SJ/2007년
– observeri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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