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문 심사평

-성인부-

글. 공광규 / 시인

적도에서 보내온 정성 어린 많은 분들의 시를 읽었습니다. 고국을 떠나 먼 이국에서 생업을 하시며 사시는 분들, 또는 그곳에서 한국어를 하시는 분들의 생활과 감정을 시로 경험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나름의 큰 인생 공부를 하였습니다. 시들을 여러 번 읽어가면서 고민을 한 결과 이희재 님의 <밀대질> <바람소리>를 최우수 작으로, 김명희 님의 <갱년기1>을 첫 번째 우수작으로, 문인기 님의 <눈물 어린봉숭아>를 2번째 우수작으로 뽑습니다. 헤를린다 님의 <오래된 연인>을 특별 작으로 가작으로는 전진출 님의 <아버지와 버스>를 뽑았습니다.

최우수상인 이희재님은 시를 어떻게 써야 한다는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시 형식을 알고 있습니다. 이희재님의 5편의 시가 모두 그렇습니다. 그 중에서는 <밀대 질>이 제일 좋고 <바람소리>가 다음이라는 생각입니다. <밀대 질>은 화자가 청소를 하는 현재 한국의 청소기를 생각하고, 현재 쓰레기를 버리면서 한국의 분리수거를 떠올립니다. 또 밀대에 물을 발라 밀대 질을 하면서 걸레로 방을 청소하던 고향의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이렇게 현재와 과거라는 시간적 공간을 오가고, 인도네시아와 한국이라는 지리적 공간이 오고 가면서 시를 입체화시킵니다. 시의 비밀을 아는 분입니다. <바람소리>는 바람을 의인화합니다. 이 의인화된 바람과 숨었다 드러났다 같이 노는 모습을 활달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다른 시들은 좀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마 투고된 전체 원고 중에서 단 한 편만 뽑으라면 김명희님의 <갱년기1>일겁니다. 뜨거운 내면과 시의 가슴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강렬한 내면에서 분출되어 나오는 서정적 충동을 잘 받아 적을 줄 아는 분입니다. 김명희님을 아껴서 다음에 더 좋은 시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시편들에서 필요 없는 구두점이나 부호가 보이고 띄어쓰기도 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공부기간이 짧아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조금만 더 시간과 공을 들여 공부하시면 좋은 시를 쓰실 것 같습니다.

문인기 님의 <눈물 어린 봉숭아>는 위안부로 희생당한 할머니들의 삶을 봉숭아에 빗대어 형상화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에도 그런 희생의 장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데, 이런 역사를 환기시키는 것도 빼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헤를린다(Herlinda)님은 반복과 음악성이라는 시의 원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의 호흡이 긴 <오래된 인연>을 특별 작으로 뽑습니다. 긴 문장을 쓰는 능력이 보이고, 나와 추상적인 그를 내면적 대화방식으로 엮어갈 줄을 아는 분입니다. 그가 누구인지 모호하게 처리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드러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가작인 전진출 님의 시도 감동적이고 호흡이 좋았습니다. 더욱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학생부 심사 평
학생들의 시를 읽어가면서 청춘에 대한 절대적 고민과 학업에 대한 괴로움, 그 가운데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은 한국이나 인도네시아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응모된 시를 통해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고 있는 교육과 이민사회, 자연에 대한 시선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응모된 학생들의 시 가운데 김주은님의 <고3><회색 일상 속 작은 무지개>를 첫 번째 우수상으로 두 번 째는 김신영 님의 <나의 나라>를 뽑습니다. 이윤영 님의 <밤하늘><꽃 한 송이>를 장려상으로 뽑았습니다.

김주은님의 <고3>은 화자가 처한 현실을 자연과 조화시키면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학교 운동장을 일부러 걸어보고 “초록빛 잔디밭과/ 담 넘어 보이는 바나나 나뭇잎/ 프랑지파니 꽃 길을 걸으면서 등, 학교 길을 추억합니다. 화자의 시선이 잔디밭에서 담 넘어 꽃 길로, 과거 등굣길로, 등굣길의 붉은 노을과 번지는 불빛으로, 그리고 별빛으로 이동하고 확장됩니다.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시간이 이동됩니다.

웃고 행복했던 지나간 과거와 먹구름이 해를 가리듯 빗방울이 떨어지듯 어둡고 쓸쓸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화자입니다. 화자는 이런 웃음과 꽃 향기로 가득했던 날들이 추억으로만 남지 않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절망과 퇴행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긍정의 시입니다. 자연물인 잔디밭과 바나나나 나뭇잎, 프랑지파니 꽃, 노을, 별빛, 먹구름, 빗방울, 햇빛, 맑은 공기, 꽃 향기 등이 동원하여 시를 풍요롭게 합니다.

<회색일상 속 작은 무지게>는 차 좌석과 한 몸이 되어 학교에 가는 갑갑한 학교생활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학업의 고통이 시 속에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화자는 이런 씁쓸한 기분이면서도 동시에 반복될 내일을 받아들이는 긍정적이고 강한 자아를 가졌습니다. 그러니 화자에게 내리는 빗방울도 선물이고, 갑갑했던 마음에도 작은 무지개가 희망으로 뜹니다.

김신영 님의 <나의 나라>는 화자가 유학하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처음에는 비와 구걸하던 아이들과 차량과 길거리의 냄새들과 사원의 기도소리 등 모든 게 어색했지만 지금은 정이 들어 자신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향수병에 걸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었던 날도 있었지만 지금은 <추억>이 되어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좋은 시들입니다.

이윤영 님의 <밤하늘>은 밤하늘에서 자신의 외로운 마음을 치유 받고 있으며 <꽃 한 송이>를 통해 ‘누가 감히 그 꽃 위에 내려앉을 수 있겠는가’하고 아름다운 것의 위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수상대열에 오르지 못한 많은 시들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앞으로 시를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최종심사-공광규 시인, 박윤배시인 / 예비심사 -한국문협 인니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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