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탄탄한 글쟁이가 될 때까지

[수상소감] 이영미

해외생활 14년 차,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열정적으로 달려온 20대를 등지고 택한 곳인 방콕은 비행기에서 내린 순간부터 나를 잡아 끌던 후덥지근함이었습니다.

이제는 태국이 한국보다 편해졌다 싶었을 때 다시 남편을 따라 또 한 번 인도네시아 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가을 날씨를 닮은 인도네시아가 낯설지 않다고 생각되니 아마도 저는 타향살이에 길들여졌나 봅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재미에 피곤함도 잊고 이제 다섯 살이 된, 종알종알 책 읽기 좋아하는 둘째와 동화책을 읽고 있는데 걸려온 수상축하 전화에 놀라 가슴이 쿵 하고, 잘 나온’사진과 수상소감을 보내달라는 말에 걱정으로 또 한 번 쿵!

강산도 변화시킨다던 그 십여 년 세월 끝에 서 있는 중년의 여성이 저는 아직도 낯섭니다. 그래서 목욕탕에 거울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는 딸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이 훌쩍 커버릴까 아까워서, 렌즈에 담긴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이 두려워서 언제부터인가 제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고른 몇 안 되는 사진들이 몇 년 간 인도네시아에서 살아온 제 모습을 대변한다니 허탈한 웃음도 나지만 이제부터라도 제 사진을 가끔 찍어야겠습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급한 호흡으로 써 내려간 글을 다시 읽는 것 또한 곤욕입니다.

왜 이리 모자라게 뭉텅뭉텅 비워 놨을까라는 부끄러운 감상과 이런 영광스러운 기회를 주신 분들께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
‘다음에는 제대로 쓰리라’다음에는 살아온 세월만큼의 고뇌와 깊음을 보여주리라.’

수십 년 넘게 반복되어 온 결심이 이 기회에 굳어져 머릿속을 가득 메운 잡념이 어려운 시간을 버티는 저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걷는 이들에게는 꿈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탄탄한 글쟁이가 될 때까지 감성이 무뎌지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아침마다 마주보고 웃을 수 있게 거울 하나를 사렵니다. 이렇게 기쁘고 고마운 기회를 주신 적도문학상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드리며 사랑하는 가족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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