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진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12월 31일 아세안공동체가 공식 발족한다. 아세안은 지난 10 여 년 동안 정치/안보, 경제 및 사회/문화 3개 분야별로 공동체 창설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은 상태에서 우선 발족하고 2025년까지 보완 작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아세안공동체 창설이 과연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첫째, 이 지역 경제성장 흐름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고 새로운 성장대를 형성할 것이다. 아세안은 인구 6억3000만명, GDP 규모 2.5조달러의 거대한 경제력을 가지고, 중국 인도에 이어 아시아 경제의 제3 성장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다. 연 5% 이상 성장을 해 오던 아세안 경제가 금년 4.5% 수준으로 떨어져 다소 실망스럽지만, 내년 중국(6.5%), 인도(8%), 아세안(4.8%)의 성장 전망치는 세계 경제에서 단연 돋보인다.
동아시아의 경제가 현재 아시아 전체로 뻗어나가는 추세 속에서 중국 인도 아세안으로 이어지는 성장대가 부상하면서 이제까지의 한 중 일의 동북아 성장대를 대체하고 있다. 아세안공동체의 탄생은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할 것이다.
둘째, 세계의 관심이 새로운 해양 세력의 등장에 쏠리고 있다. 이의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 대륙국가 중국은 해양강국으로 발전하여 명실상부한 세계국가가 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경제 제3성장엔진으로 떠올라
‘일대일로’ 구상에는 태평양, 인도양 및 아라비아해로 나가는 해양 전략들이 포함되어 있고 제13차 5개년 계획(2016-2020년)에 반영되어 내년부터 본격 실행된다. 이에 대해 해양 패권 세력인 미국은 태평양 인도양에서 중국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세안은 대륙세력이자 태평양과 인도양의 연결고리에 위치해 있는 해양세력이다. 또한 남중국해 문제의 직접 당사자이다.
미 중이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해양 패권을 두고 양보할 수 없는 승부를 하면서 동남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계속 높아질 것이다. 최근 미국의 관심도 태평양, 인도양과 동남아로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동북아 국가 한국은 불안하다.
아세안이 공동체 창설을 서두르는 이유는 큰 나라 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겠다는 의도이다. 아세안공동체가 큰 나라들의 해양 패권다툼에 어떠한 처방전을 낼지 모르지만 우리 주변지역의 정치, 안보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셋째, 아세안공동체의 창설은 아세안 회원국의 개혁. 개방 및 국내 민주화 등 국가 역량 발전과 지역협력에 기여할 것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장기 집권, 군사 정권, 정치 스캔들 등 아직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민주화에 대한 국민 의식수준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미얀마 군부가 지난 총선 패배를 깨끗이 승복하고, 인도네시아 정부 최초로 군 출신 아닌 인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내년 초 대만 과 필리핀 선거에서도 국민들의 의사가 존중될 것이다.
우리에겐 기회와 함께 위기도 가지고 올 것
동남아 여행자들은 이 지역 국가들의 개방 수준과 속도에 놀랄 것이다. 아세안 상호 비자 면제, 휴대전화의 무료 로밍 운행 등이 추진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8년 간 동남아 배낭여행을 할 때 주로 국제노선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아세안 통합 과정에서 개혁 개방 민주화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나라 사이 사회적 통합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공동체의 창설은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하고 아세안 상호 간 및 동아시아 국가 간 발전 격차를 줄여나갈 것이다.
향후 10년을 내다볼 때 아세안의 통합과 중국의 ‘일대일로’전략이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 안보, 경제적 구조 변화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우리 사회는 아세안의 발전은 물론, 동남아 발 동아시아 지역 정세 변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세안의 통합 및 ‘일대일로’는 한국에게 기회와 함께 1997년 같은 위기도 가져다 줄 것이다. 정부 내 특별 대책반이라도 세우는 등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