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 서울 출생
·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
· 전업주부
<수상소감>
안녕하세요. 2024년 제6회 적도문학상 수필 부문에 응모한 이미경입니다. 평범한 주부로서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원고지의 공간을 메운 글이 최우수상의 영광을 얻게 됐습니다.
“그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는 제목의 글은 인생의 한 중턱에 오른 저의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며 다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써 잠시 입가에 머물게 할 미소와 잔잔한 생각으로 한 번쯤 잊고 있었던 현실적 감각을 되짚게 해줍니다.
모든 게 점점 AI 시간으로 변화되고 광고, 소셜미디어, TV, 개개인의 스마트폰 속에서 눈으로 보이는 과잉의 이미지, 영상들이 우리의 뇌와 마음에 깊숙이 쌓여가는 작금의 시대, 적어도 우리의 일상에 마음의 여유를 돌아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찾아가고 그 내면의 성숙함을 뚜벅뚜벅 한 발짝씩 함께 그려나가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최고로 귀하고 뜻깊은 상을 수여해 주신 적도문학상 심사위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4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그 마음이 머무는 곳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한 여자 꼬맹이가 논밭에 펄떡거리며 숨은 개구리를 잡는다고 이리저리 뛰놀던 기억을 떠올린다. 개구리가 잡히지 않자 이내 곧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떼를 쓴다. 부모님께 그런 얘기를 들으며 내가 왜 그랬나 싶은 생각에 웃음이 절로 흘러나 온다.
50년 전 내 마음속 깊숙이 저장된 수채화는 화방용 팔레트에서 묻어나오는 색감들을 덧칠하게 한다. 앞머리 반쯤 일자 모양의 바가지 머리를 한 그 꼬맹이는 동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뒷산에 올라가 도토리, 밤, 대추, 감 등을 딴다고 온 동네를 왁자지껄하게 만든다.
골목대장처럼 남자아이들도 꽤 많이 그 꼬맹이를 따랐다. 고무줄놀이, 공기놀이보다 제기차기, 말뚝 박기, 땅따먹기, 비석 치기를 더 좋아하며 진심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남다른 자질로 군인이 되고 싶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명절 때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부모님과 버스를 타고 간낙동강 유역의 구불구불한 도로는 공포의 놀이기구 롤러코스터 기억으로 남는다. 굽이굽이 소용돌이치는 흙먼지 비포장도로 길은 그야말로 운전기사의 곡예 운전 진수를 보여준다.
가파른 절벽 길가에 도로 경계석조차, 그 어떤 안전 방어벽 장치 없이 버스가 돌 때 바로 절벽 밑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아찔한 경험은 아직도 그 전율이 온몸에 생생히 퍼진다.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피부색으로 온 동네를 휘졌었던 성격은 부모님과 상경한 서울에서도 여지없이 이사 다니던 동네마다 그 흔적을 남기곤 했다.
80년대 서울의 한 외곽 동네에 살며 그 시절 국민학교 방과 후 책가방을 내던지고 동네 친구들과 뛰놀던 씩씩한 꼬맹이는 겁도 없이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돌아다니며 해 질 녘까지 노는데 일등 선수였다.
하루가 멀다고 부모님께 많이 혼나기도 했는데 그 집 단칸방에서 흘러나오는 몽글몽글한 웃음보따리는 옛 추억의 온기를 포근히 감싸준다.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으로 중, 고등학교 가서도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학급에서‘예능 부장’이란 타이틀도 얻으며 나름 학창 시절의 추억들은 알찼었다. 외교관의 꿈을 가지며 치른 당시 대학 학력고사 결과는 인생의 큰 난관으로 재도전의 기회도 무른 채 사회생활로 시작하게 됐다.
열심히 직장 생활도 하며 평범한 삶을 사는 중 대기업에 취직한 소위 성공한 친구들을 만나면 작아지는 자존감은 내 마음속 전쟁이 되었다. 점점 소원한 친구 관계는 인도네시아로 결혼해 오며 연락이 끊겼다.
돌이켜보면 슬픈 기억들이지만 지금은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도 하다. 혹시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다면 눈물부터 그렁그렁해질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을 몇 번 다녀와 보면 다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게 된다. 그중 나의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잠깐의 여유도 누리지 못한 채, 각자 삶의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의 분주함은 그 다급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지 생각이 든다.
우리네 중심인 마음은 그것을 두고자 하는 것에 모든 의미를 쏟아붓는 것 같다. 아마도 교육, 취업, 내집 장만, 결혼, 노후, 등등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생관에 있어 중요한 키워드일 것이다.
더군다나 SNS로 자신을 더욱 드러내고 연출하는 이 시대, 보이는 이미지가 혹시 위선일지라도 안타깝지만, 사람들은 더 심취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계층이라는 것이 나누어지고 그것을 이루고자 사람들은 더 예민하며 불안, 초조, 근심, 걱정하는 일련의 문제들은 평안한 마음이 머물러야 할 곳을 찾지 못하는 늪이 되기 때문이다.
매번 빨리빨리 결과를 이루어야만 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허둥대며 갈피를 못 잡고 살 수 없는 나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되면 인도네시아에서 정신적으로 여유로움을 갖고 생활하는 것에 나는 감사하게 느낀다.
아마 한국에서 계속 살았으면 내게 이런 호사는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한국처럼 4계절이 있지 않지만, 건기, 우기 속에서 나름대로 때마다 그 시기의 멋과 낭만을 유유히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집안 뜰에 바나나 나무(Pohon Pisang), 망고(Mangga), 람부탄(Rambutan), 시르삭(Sirsak), 야자수(PohonKelapa), 두리안(Durian), 파파야(Pepaya)등 체험학습으로 수년간 심은 식물들은 빽빽한 밀림 숲이 됐다.
기습적인 폭우에 창문 너머 거대한 바나나 나뭇잎은 거칠게 흔들거리고 점점 세찬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릴 때, 수제 드립 커피 한잔에 퍼진 진한 아로마 향기는 집안 곳곳을 운치로 머금게 한다.
그 커피향은 지그시 나의 눈을 회상하게 한다. 도심을 벗어난 해안가 휴양지에서 바라본 인도양, 태평양을 마주하노라면 자연의 색채로 짙어지는 노란 붉은 노을은 인도네시아 이국적인 풍경을 흠뻑 담았던 내 마음속 사진기 셔터의 한 감성을 더해 준다.
한국의 맞벌이 가정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분주하게 돈을 벌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 오늘 하루도 허겁지겁 달려가지만, 과연 그 안에 진정한 마음의 여유와 위로가 있을까? 한국 내 살면서도 고단한 서로의 삶으로 친구끼리 차 한잔 마시는 소소한 시간이 허락되는 경우가 주위에 얼마나 될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1년 365일,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각자 다르겠지만 나만의 힐링 시간을 얻는 몫은 그 마음이 머무는 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 마음의 안정을 누리며 평안한 생활의 진정한 쉼터가 되어준 인도네시아!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그 추억의 한 페이지를 넘기며 회고할 수 있는 여유, 그 마음이 머무는 시간을 지닌 나는, 오늘도 행복한 시간 부자이다.
<심사평>
최우수상에는 이미경의 작품 <그 마음이 머무는 곳>을 선정하였다. 이 수필은 다른 응모작에서는 볼 수 없는 주제적 양식으로서 수필의 시학과 미적 울림구조를 확보하고 있다. 모든 작품들이 기본적으로 미적 대상임을 전제할 때 수필작품 속에서 생성된 미의식을 음미하는 것은 작품해석의 최종적인 단계에 해당된다. 그런 면에서 이미경의 작품은 완성도가 높은 수필이라 할 수 있다. 심사: 서미숙(글), 김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