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적도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최하준)

최하준

<수상 소감>
그렇다, 시작은 ‘적도문학상’ 이었다. 지금껏 나의 글을 어디에도 응모를 하지 않았으며,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적도문학상’ 이란다.

아, 처음 이 단어를 보았을 때,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덮쳤던 그 아늑하고 이국적인 달콤함이란! 며칠을 몽롱한 느낌에 취해 있다 결국 알게 되었다. 내가 왜 ‘적도문학상’이라는 단어에 그렇게도 끌렸는지. 이제는 전혀 나와는 상관없는 단어라 잊어버렸던, 몰랐던 것이 아니라 잊고 살았던, 그것!
‘적도문학상’이라는 단어가 당겨온 것의 실체가 낭만이었음을!

결국 내가 취했던 것은 낭만에 대한 몸의 생화학적 반응이었던 것이다.
나를 그토록 흔들었던 감정이 낭만이었음을 알자 문학청년이었던 시절로 순간 돌아갔다. 문학의 출발을 낭만으로 알고 있었던 시절. 많은 작가의 글들을 필사하던 시절.

이번 ‘적도문학상’ 응모는 상에 대한 응모가 아니라 낭만을 다시 기억해낸 나에게 대한 반성과 앞으로 다짐 차원이었다.

그 반성과 다짐을 애틋하게 봐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런 멋진 이름의 문학상을 만든 분들께 브라보!! 라고 크게 외쳐 드린다!

[약력]
.1967년 부산 출생
.고등학교 시절 서울로 전학
.한양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대학 졸업 후 전형적인 공돌이 인생을 살면서 주로 외국을 돌아다님
.공장 설계 및 공사가 주특기
.현재 2차 전지 관련 소재 기업의 인도네시아 공장 건설을 위해
22년 10월부터 인도네시아에 거주 중

[시 부문 우수상]
김氏의 가을

1.
그 해 가을은
김氏의 아궁이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길거리 진열장과 여자들이 흰 목덜미를
단풍처럼 부드러운 갈색으로 감싸고 언덕배기
김氏의 습기 찬 아궁이에도 몰려왔다
그 해
가을을 찾아 사람들은
가을보다 더욱 화려하게 산으로 유원지로
혹은 자신 속으로
유행처럼 몸살을 앓으며 떠났고
이사를 갈 때에서 집을 수리할 때
불쑥불쑥 사람들에 나타났지만
어디에 사는 지 아무도 모르는 김氏는,
떠남으로 텅 빈 거리에 사람들을 찾아 매일처럼
이슬 그림자를 밟고 새벽과 함께 내려왔다
그 해
가을에 이어 오는 그 해
겨울을 위하여 김氏는 여름보다 더욱
진한 땀을 흘렸고
김氏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김氏의 가을도
떠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 해 김氏의 아궁이에는 가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북한강에서

2.
오래 전부터 강은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끊임없이 기다리는 모습으로
어디로든 쉽게 떠나지 못하는 발걸음들이
경춘선을 타고 북한강을 내려오면
낮게 고개 숙인 채 강은
보이지 않는 서로의 가슴을 지나
서해 먼 바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기다린다는 것은 도달을 말하는 것인가
제 스스로 바닥을
받아들이고 껴안아야만
앞으로 나아가는 질긴 생명력
살을 파고드는 바람 때문이 아니라
얇게 마르지 않기 위해
물안개를 밀어 올리며 사람들 속으로
천천히 역류하면
어느 새 기다림은 기차를 빠져나와
강 저 편으로 깊숙이 스며든다

[심사평]
최하준의 「김 씨의 가을」은 스토리 시의 형식을 보여주면서 행과 행 사이, 곳곳에다 별사탕 같은 직관의 언어들을 숨겨놓아 시를 읽는 맛이 더욱 찰지다. “기다린다는 것은 도달을 말하는 것인가/ 제 스스로 바닥을/ 받아들이고 껴안아야만/ 앞으로 나아가는 질긴 생명력”, 놀라운 직관의 언어이다. 생을 대하는 시인의 진지함 마저 엿보인다. 산문체보다는 운문체를, 좀 더 강한 압축미를 주문하고 싶지만, 앞으로의 창작 과정에서 자연스레 완성될 것임을 확신한다.

<심사: 김준규(글), 김주명, 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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