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국민 각성일 (Hari Kebangkitan Nasional)

(2015년 5월 19일)

오는 5월 20일은 국민 각성일이다.

이날은 식민지치하의 인도네시아에서 독립운동과 민족주의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다. 네덜란드 지배하이던 1908년 5월 20일 인도네시아 의사들은 부디 우토모(Budi Utomo)라는 지식인 모임을 결성했다.

부디(Budi)라는 단어는 ‘마음, 정신’이라는 뜻이며, 우토모(Utomo)는 ‘우수하다, 좋다’라는 의미이다.

부디 우토모는 처음 식민지정부에 교육기회의 확대와 문화수준의 향상과 같은 온건한 요구를 했으나 점차 의회설립 등 정치적 요구를 하게 되었다. 이 모임은 원래 정치적 목적이 아닌 사회·경제·문화적 목적에 의해 구성되었었다.

부디 우토모는 1908년 5월 20일에 결성된 후 10월 3일-5일에 제1차 회의를 개최하였다. 당시 회의에는 바따피아 (현 자카르타), 보고르, 반둥, 마겔랑, 족자카르타, 수라바야, 보노로고 부디 우토모 지부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아디빠띠 드리또꾸수모(Adipati Tirtokusumo)가 제1대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으며 이 회의를 계기로 부디 우토모에 참여하는 이들의 수가 늘게 된다.

당시 이에 가입해 활동했었던 수와르디 수르야닝그랏(Suward Suryaningrat)의 경우 인도네시아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재임했으며 인도네시아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부디 우토모에서 보건분야를 담당했던 찝또 망운꾸수모(Cipto Mangunkusumo)의 경우 그 공을 인정받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국립중앙병원 RSUP (Rumah Sakit Umum Pusat)이 찝또 망운꾸수모 병원으로 명명되었다.

부디 우토모 결성 이후 국내 다수의 청년기구들이 결성되었는데 1928년 10월 28일 그 청년기구들은 자카르타에 모여 회의를 개최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청년선서’라 명명된 이 공동성명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를 역설했다.

이는 국내 다수의 섬들 내 국민들이 함께 독립을 위한 투쟁을 전개한 하나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