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인다던 코로나19…중국발 방역변수에 비상경계 유지

방역 데이터 감소·변이 바이러스 진화로 불확실성 증대…”신중한 탐색 필요”

“3년간 봉쇄 헛수고”…코로나19 사망 급증에 中국민 분노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해 3년간 이어온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유지하기로 한 데는 중국발 방역 변수와 변이 바이러스의 지속적인 진화, 부족한 방역 데이터 등이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백신·치료제 보급과 각국의 방역 노력 속에 3년 사이 코로나19의 위험성이 많이 낮아졌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당장 경계수위를 낮췄다간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 요인들이 최근 속출하면서 신중론이 다시 설득력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 “끝이 보인다” 말한 적 있지만…중국 확진자 급증세가 변수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총장은 작년 9월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을 끝낼 위치에 우리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끝이 보인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작년 말 회견에서는 “내년에는 코로나19에 대한 PHEIC가 해제되길 희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하위 변이를 만들어내며 면역 회피력과 확산력을 키우는 점이 문제였지만 위험도가 낮아진다면 머지않아 PHEIC는 해제될 가능성이 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는 코로나19 위험도를 가늠하는 중요 지표인 사망자 수가 지난해 감소세를 보인 점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작년 초 7만명에 이르던 주간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작년 하반기부터는 1만명대에서 유지되면서 위기감이 낮아졌다.

그러나 작년 말 방역 규제를 완화하면서 감염자 급증세를 보인 중국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인구 14억명이 넘는 중국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무더기로 나온다는 소문은 퍼졌는데, WHO에는 중국 당국의 방역 데이터가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코로나19 관련 사망자를 지나치게 좁게 정의하는 중국의 집계 방식도 문제였다.

중국은 코로나19 사망자를 정의할 때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 호흡 부전을 겪다 숨진 경우로 제한했는데 이는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실제보다 매우 적게 나오게 하는 결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WHO는 최근에야 중국으로부터 ‘상세 분류가 안 된’ 방역 데이터를 일부 입수했다. 이는 이달 16일부터 22일 사이 1만2천여명이던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단번에 4만명으로 폭증하게 한 요인이 됐다.

태워드로스 총장은 지난 27일 코로나19 PHEIC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 국제 보건 긴급위원회를 소집한 자리에서 “지난주 4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WHO에 보고됐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중국에서 나왔다”고 전격 발표했다.

중국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정점을 이미 찍었다는 입장이지만 이달 하순 최대 명절인 춘절 기간에 ‘민족 대이동’을 거친 뒤 방역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판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WHO는 이런 변수를 고려한 듯 이날 “신중하게 상황을 탐색하면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라는 긴급위원회의 조언에 따라 PHEIC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중국, 3년만에 방역 제한 없는 춘제…21억 대이동(CG)
중국, 3년만에 방역 제한 없는 춘제…21억 대이동(CG)

◇ 데이터 부족과 변이 바이러스 진화, 계절적 요인 등도 배경

중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집계하는 확진자 수가 사실상 코로나19 확산도를 가늠할 만한 지표로서 기능을 잃고 있다는 점도 변수가 됐다.

2020년이나 2021년과 달리 지난해부터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더라도 검사를 받지 않거나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코로나19 검사를 무료에서 유료 체계로 전환한 국가들도 많아져 검사 회피 경향이 더 커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WHO 측은 집계의 정확성이나 신뢰성이 들쭉날쭉한 각국의 신규 확진자 수 통계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워졌다. 통계상 신규 감염 건수가 감소한다고 해도 유행이 잦아들고 있다고 판단할 수 없는 셈이다.

검사 회피 경향이 낳은 데이터 부족 문제는 확진자 수뿐 아니라 바이러스 관련 정보 분석 과정에서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WHO는 각국으로부터 입수하는 바이러스 염기서열 분석 결과 등이 예전만큼 충실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오미크론 하위 변이 중 전파력이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XBB.1.5가 미국 등지에서 급격히 확산하는 점 등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디까지 진화하고 유행할지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WHO의 진단에 근거를 보탰다.

WHO는 겨울철이라는 계절적 요인도 신중론을 선택한 이유로 거론했다.

독감이 유행하는 겨울은 코로나19에 대응해야 하는 의료기관으로선 부담이 더욱 커지는 시기다.

특히 이번 겨울에는 독감 유행이 일찍 시작한 국가들이 여럿 나온 데다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까지 확산하면서 각국의 의료 여력이 충분하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커졌다.

이 밖에도 국가별 편차가 있는 백신 접종률, 각국의 정책 변화로 인해 방역 태세가 느슨해질 가능성 등도 WHO가 경계수위를 유지하기로 한 이유로 꼽힌다.

“3년간 봉쇄 헛수고”…코로나19 사망 급증에 中국민 분노

중국이 3년간 이어온 ‘제로코로나’ 정책에 마침표를 찍은 이후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할 조짐을 보인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2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중국 내 의료시설들에서는 매일 1만명이 넘는 위중증 환자가 새롭게 보고되고 있다.

급증하는 사망자에 영안실은 포화상태다. 약국은 의약품 부족을 겪고 있으며, 외국 제약회사들과의 협상이 지연되면서 항바이러스제 공급도 차질을 빚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중국인 대다수는 아는 사람 거의 모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다고 밝히는 상황이며, 연로한 친척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도 다수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대학생 서니(19·여·가명)는 작년 12월 중국 정부가 제로코로나 정책을 폐기했을 당시만 해도 안도감을 느꼈으나 이제는 그저 분노할 뿐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대처할 준비가 안 된 상황이란 걸 알면서도 방역을 완화했다는 정황이 갈수록 뚜렷해져서다.

그는 이로 인해 자신도 할아버지를 잃었다면서, 작년 4월 도시를 통째로 봉쇄하는 극약 처방에도 잠자코 순응했던 것이 “모두 헛수고였던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음력 설 연휴 첫날 베이징 시내를 메운 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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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갑작스러운 ‘위드코로나’ 전환은 보건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중국 외에도 많은 국가가 고강도 방역을 포기하고 일상회복으로 가는 길을 택했으나, 예방 접종률을 높이고 의약품과 병상 등 자원을 사전에 확보하는 등의 준비가 충분히 이뤄졌는지에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호주 제임스쿡 대학의 전염병학자인 에마 맥브라이드 교수는 “비록 감염될 사람의 수에는 큰 차이가 없을지라도 방역 완화는 완만히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보건체계가 과도한 부담에 기능을 잃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년 11월 중국 각지에서 방역 완화를 요구하는 ‘백지시위’가 일어나고 12월 시 주석이 제로코로나 폐기를 결정하는 과정은 ‘급전환’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그 이전까지는 일상회복에 대비하는 것이 시 주석에게 반기를 드는 ‘정치적 자살’로 여겨졌을 것이란 점도 대량사망 사태의 배경이 됐을 수 있다.

중국 정치 전문가 일부는 이로 인해 각 지방정부가 백신 접종률을 높이거나 의료진, 병상, 의약품을 확보하는 등 움직임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보호복 차림으로 거리에 나선 상하이의 한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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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에선 정보통제로는 더는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했기 때문에 시 주석이 제로코로나 정책을 폐기했다거나, 국가경제 정상화를 위해 단시일에 ‘집단면역’을 확보하려는 시도라는 등의 해석도 제기된다.

중국 보건당국이 지난주 인구의 80%가 코로나19에 감염됐고 2차 대유행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힌 것은 이런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정황이라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c) 연합뉴스 전재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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