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

글. 박윤길 목사/참빛교회

2015년 4월 7일

2000년 4월 5일 식목일에 부산의 한 여관에서 60대 할머니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이런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였습니다. “기자님들, 저의 죽음을 꼭 알려주셔서 우리 외손자가 집에 돌아오게 해 주세요.” 그 할머니는 이혼한 딸과 그 딸이 낳은 외손자와 함께 살았습니다.

어느 날 18살 난 외손자가 가출을 하였습니다. 집나간 손자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백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 할머니는 외손자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죽음입니다.

온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길 원하신 예수님.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세상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양이 되어 십자가에 올라가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자신의 구속사역의 완성을 선포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장례를 치렀습니다. 장례를 치렀다는 말은 그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이런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누구에게라도 크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하는 말은 크게 말하기가 난처합니다. 차라리 부활을 뺀다면 더 강하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부활을 왜 그토록 고집할까요?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생애의 절정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죽음을 걸고 증언한 선포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죽인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다.”이것이 교회의 증언의 핵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모두 헛되다고 말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이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에서 사라졌습니다. 누구도 그의 시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물론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그토록 부정하려는 유대인들이나, 로마 군사들… 그 누구도 예수님의 시체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둘째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나타나심’입니다.

죽었던 예수님이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 그 몸을 보이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부활의 두 가지 증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까?

1. 주님을 사랑하다가 슬픔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사랑은 슬픔을 낳습니다. 여러분 중에 주님을 사랑다가 슬픔을 당한 사람이 있으시죠? 주님 사랑 때문에 울고 계신 분, 바로 그런 사람을 위해 우리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2. 주님으로 인해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두 번이나 거듭해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요20:19, 21절) 부활의 주님은 두려움을 평강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오늘 주님을 믿다가 두려워하는 여러분이 있다면 부활의 주님과 더불어 마음의 두려움과 근심을 걷어내고 대신 평안과 기쁨을 얻으십시오.

3.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보냄을 받은 자 곧 목적이 있는 자로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 여러분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그대로 두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사명자로 살길 원하십니다.

4. 사명을 감당할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사명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할 힘도 주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십시오. 복음 전파를 위한 능력이, 권세와 권능이 부활의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모두 능력 있는 복음전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단이 성도에게 가져다주는 믿음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영적 우울증입니다. 두려움과 침체.

부활의 주님은 여러분의 두려움과 침체를 벗겨 주십니다. 인생의 활기가 되시고, 의미가 되십니다.

겨우 유지하던 여러분의 가느다란 삶의 호흡을 다시 뜨겁게 해주십니다. 풀어졌던 근육에 다시 힘이 솟게 하시고 느슨하게 풀렸던 신발 끈을 다시금 질끈 동여매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사명을 따라 살았습니다. 헛된 것을 위해 달려가던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그 사명을 위해 담대하게 살다가 목숨까지 바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앞서 성경이 전하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가 두 가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빈 무덤과 나타나심. 그러나 성경이 전하는 부활의 또 한 가지 강력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급격한 변화입니다.

무덤 앞에서 눈물 흘리던 여인. 무서워서 문을 꼭 잠근 채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

힘없는 발걸음으로 예루살렘을 등지고 떠나던 제자들. 그들이 어떻게 대제사장과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게 되었는가? 어떻게 그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는가? 그 해답은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변화된 예수님의 제자들! 그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가 연합하여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박물관에 전시된 부활이라는 유품을 구경하러 모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부활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동상을 세우고 동상 제막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면 아주 오래된 필름을 돌리거나 낡은 사진을 꺼내 보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죽음을 이기신 살아계신 예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시고 이 자리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 성령으로 이 자리에 와 계신 줄 믿습니다.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예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그래서 부활이 없다하는 이 시대를 향한 산 증인이 되십시오.